마냥 퐁당 뛰어들고 싶은 짙푸른 하늘, 그리고 초록물감에 흠뻑 젖어있는 평화스러운 우리 마을을 찬란한 유월의 태양이 더할 나위 없는 풍요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느낌도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부가 아니다. 때로는 담담한 세월이 마치 은둔생활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 때는 해마다 줄어드는 수다 떨 친구가 못내 그립기 때문이다. 손을 뻗으면 뛰어와 잡아주던 이웃 친구들이 다른 동네로 하나둘씩 떠나간 뒤 서툴게나마 새롭게 시작한 글쓰기는 취미가 되어 떠난 친구들 자리를 대신한다.
자연스럽게 잊고 지나왔던 수많은 과거의 일들을 퍼즐 맞추듯 반추하며 수시로 젊은 시절을 곱씹는 것도 이 나이가 아니고서는 가능한 일인가? 요즈음 부쩍 도서관 왕래가 잦아진 것도 한국코너에서 눈에 띄는 몇몇 수필집을 골라와 책장을 넘겨보는 재미 때문이다.
집 가까이에 있는 밀러 도서관은 몇 년 전만해도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최근 새롭게 현대식 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이층으로 된 도서관은 취학 전 아동들을 위한 놀이방과 작은 휴식공간에는 커피코너도 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 신간서적 진열대, 데스크탑을 들여다보는 남녀들이 눈에 띤다. 젊은 동서양의 학생들과 나이 지긋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눈여겨보며 이곳이 꽤나 높은 수준의 동네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층 창밖으로는 독서하다 지친 머리를 잠깐 식힐 수 있는 작고 아담한 정원이 마음의 쉼터같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도서관을 지금껏 남편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무거운 책을 들고 수시로 드나든다. 평소 책이라면 몇 장 넘기다 덮고 마는 성미라 흥미라고는 예능 뿐, 아이큐(IQ)보다는 이큐(EQ)쪽에 체질이 맞다 고나 할까. 지적과 예술적의 조합은 우리 부부가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오랜 세월 조화롭게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숙성된 된장 맛에 즐겨 비유하곤 한다. 어딜 가나 이 나이에 두 사람이 닮았다는 얘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 한 곳을 보며 부대낀 세월이 얼마인데, 잘 맞춘 톱니바퀴처럼 나란히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노학자의 말처럼 인생 백세를 눈앞에 두고 뒤돌아보면 칠십 고개가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노라고 하는 그 순간을 지금 우리가 무심히 지나가고 있지나 않은지. 창밖을 바라보면 공평하게도 살랑살랑 바람에 일렁이는 연한 나무 잎새들 위에, 또 강아지 앞세우고 산책하는 아줌마의 눌러 쓴 모자챙 위에, 잔디 위에 조는 듯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 솜털 위에, 그리고 불 꺼진 가로등 위에도 따가운 태양은 햇살을 골고루 나누어 주고 있다.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고들 한다, 지난 주말에는 우리 차를 이용했던 한 지인이 돼지 족발이며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밑반찬과 손수 재배한 채소를 비닐봉지 가득 담아 차 안에 집어넣어 주었다. 언제 한번 날을 잡아 맛집으로 초대해야지, 속으로 생각하며 이같이 소소한 일에 또다시 감동이 인다. 반쯤 열려진 차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쏴” 들어와 유월의 때 이른 열기를 식혀준다. (blog.naver.com/soon-usa)
<
윤영순 우드스톡, MD>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