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잘 안 먹는 아이였다. 4년 안에 우리 삼 남매를 줄줄이 낳은 엄마는 내가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해도 그중 맏이인 나를 쫓아다니면서 밥을 떠먹이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앉은뱅이 소반에 올망졸망 세 명의 꼬맹이들과 마주앉아 삼시 세끼를 치러 내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염없이 긴긴 시간 밥을 먹는 버릇이 들었는데, 밥을 한술 입에 넣어주면 씹지 않고 그대로 입에 물고 있곤 했던 것이다. 밥을 씹지 않아도 십 분 쯤 입안에 넣고 있다 보면 침에 의해 분해가 되면서 단맛이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밥상 앞에 앉아 있던 기억이 있다.
그처럼 입이 짧은 나였지만, 그나마 잘 먹던 음식이 있었는데, 밥에 반숙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간장 조금, 참기름 조금, 깨소금 조금 넣고 쓱쓱 비벼먹는 계란밥이다. 참기름의 고소한 향과 노른자가 스며든 윤기 나는 밥알은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해서 아무리 깨작거리는 나라도, 그럭저럭 한 그릇 비울 수 있게 해주는 영양 만점 유아식이었다. 다행히 사춘기가 지나면서는 입맛이 돌기 시작해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튼튼한 어른이 되었고 최근에는 오히려 다이어트에 신경 써야 할 지경이다. 누구나 어릴 때 길들여진 소박하지만 입맛 도는 음식이 있을 텐데, 학교 앞 떡볶이일 수도 있고 비 오는 날 먹은 부침개일 수도 있다. 혹자에게는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긁어주던 사과 과육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마카로니 치즈일 수도 있고, 팬케잌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음식의 맛, 그 자체보다 그 음식에 담긴 추억과 스토리가 향수를 불러오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한번씩 그 맛이 그리워지고, 특히 힘이 빠지고 우울한 날이 되면 그런 음식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기운을 차리는 게 아닐까?
어제는 밥 먹다가 아이들에게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엄마가 만약 나이 많이 들어서 혼자 밥 차려먹기 힘들 때가 되면 엄마를 위해서 가끔 계란프라이를 해줘. 나중에 엄마는 계란밥이 되게 먹고 싶을 거 같아.” 내가 늙고 소화도 시원찮은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면, 다시 인생의 시간을 돌고 돌아 아기적 입맛으로 회귀할 것 같다. 계란밥을 오물오물 먹는 할머니를 상상하니 왠지 흐뭇해진다.
<전성하(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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