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농사 지을 땅도 없는 서울 집 옥상에 만든 텃밭을 보여주면서 뿌듯해하셨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엄마를 닮아서일까? 식물 가꾸기가 취미인 나는 주일예배 후 교회 근처 홈디포(Home depot)를 참새가 방앗간 지나들듯 매주 들러 새로 나온 갖가지 꽃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새 흙, 농기구, 화분, 비료를 구입하여 옆마당에 텃밭을 만들었다. 회사 행사 장식에 쓰였던 다육이를 키웠더니 엄청 잘 자라고 양도 많아졌다. 지인에게서 얻어온 쑥과 올 봄에 마트에서 사온 상추 모종을 심었다. 상추도, 얻어온 쑥도 봄비를 맞고 자라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다 보니 텃밭에 손이 간다. 요즘 속절없이 내리는 봄빗물처럼 내 마음도 어디론가 떠내려가던 중 작은 텃밭을 가꾸며 어릴 적 추억에 잠겼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도시를 벗어난 곳에 위치한 시골 할머니집을 좋아했다. 시골집 오른쪽에 몇 계단 올라서면 큰 텃밭이 있었으며 뒷마당에 거대한 나무 한그루와 널찍한 텃밭이 또 있었다. 텃밭에는 가지, 고추, 호박 등 갖가지 채소가 풍성했으며 그중에 붉은 주황색 빛을 발하는 꽈리가 달린 식물이 내 눈에 들어왔었다. 앞마당 수돗가 옆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사발 그 뜻이 뭔지 모르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집에서 행복했던 추억은 앞채에 사시는 큰 이모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집 서너 계단 밑 건너편에 위치한 큰 이모할머니집에 놀러가면 큰집 오빠들과 큰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사랑받았던 기억이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어느 가을 근처 사시는 외삼촌 할아버지를 따라 뒷산에 올라 장대로 쳐주면 떨어진 밤을 주워 와 화로에 맛나게 구워먹었던 따뜻한 아래목 추억도 있다.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초봄에 친구들과 쑥을 캐러간 적이 있었는데 추운 겨울을 지켜낸 봄 쑥들은 향이 참으로 진했다. 친구들과 캐왔던 쑥으로 만든 쑥버무리, 냉이 된장국, 달래무침, 돗나물 무침 생각으로 침이 고이는 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두 곤고해진 지금 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에서 느꼈던 사람사는 정, 아마 그 따뜻한 정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할머니 동네를 휘저으며 뜯어온 향 가득한 쑥은 아니지만, 봄비 내린 후 자란 쑥을 쏚아내며 어릴 적 고운 추억을 음미해볼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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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경(연방정부 컨트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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