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알렉산드로 구스토프. 그는 러시아의 백작이다. 그의 세계는 자유로 가득차 있다. 그의 주변에는 늘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한다. 예술, 문화, 전통, 사회가치는 그의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그의 세계에 빛을 더한다. 그에게는 사회적 명성과 지위, 명예, 경제적 풍요를 이루기 위해 아둥바둥 애쓰면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그에게 다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는 완벽하다. 적어도 그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잃고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그의 삶은 한순간에 극적으로 뒤집힌다. 1에서 0으로. 유에서 무로.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중간과정이 생략된 극단적 삶의 변화는 구스토프 백작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통제력 잃게 했다. 무기력해진 백작은 자살을 계획한다. 알렉산드로 구스토프로 살기를 거부하고 백작 알렉산드로 구스토프로 죽기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결심을 뒤집고 살기로 마음먹는다. 알렉산드로 구스토프가 아닌 백작 알렉산드로 구스토프로 살기를 선택한다. 그는 그렇게 백작 알렉산드로 구스토프로 종신 연금형의 시간을 산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나를 규정하던 모든 규칙과 질서가 증발되고 하루 아침에 나의 소유도 나의 정체성도 내가 속한 사회도 없어져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게 되는 걸까. 그 순간에 내게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세상과 어떤 관계로 살아가게 되는 걸까. 에이모 토울스의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신사는 구스토프 백작의 삶과 시간을 따라가며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살기로 결심한 후 구스토프 백작은 비장함과 묵직함을 재료 삼아 삶을 재건해 나간다. 하지만 정작 재건된 그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은 비장함과 묵직함을 제대로 쌓아올릴 수 있도록 그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한 유머와 따뜻함, 그가 처한 상황에서 가능했던 집중과 선택, 그리고 그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삶을 공유해 준 사람들이었다.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을 때 만나보면 좋은 사람, 알렉산드로 구스토프 백작. 그 사람의 이야기 모스크바의 신사. 나에게 기꺼이 자신들의 삶을 공유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전윤재 (오클랜드도서관 한국어섹션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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