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귀한 친구를 사귀고 있다. 처음에는 다가가기도, 익숙해지기도 쉽지 않은 친구였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나와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이 친구가 나를 이끌고 가니 내가 이 친구를 조금씩 닮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이제는 이 친구와 만나기 위해 기대를 품고 일찍 잠에서 깬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노래의 가사처럼 말이다.
보통 친구라 하면 사람을 말하지만, 사실 내가 말하는 이 친구는 쉰이 넘은 나이에 만난 악기, 클라리넷이다. 친구는 상대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걸까? 이 친구가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더군다나 내가 피곤한 지도 모르고 있을 때에도 살며시 나에게 쉬라고 속삭여 주는 귀여움도 있다. 이 귀여움은 이런 거다. 클라리넷을 불어 보면 미운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이 경우는 몸이 고단하여 쉬어야 할 때인 것이다. 무생물인 클라리넷 친구를 통해 사람 친구도 많아졌다. 음악은 서로를 연결해주는 큰 힘을 갖고 있어서 클라리넷을 통해 친구가 된 우리는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예전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브람스가 작곡한 클라리넷 곡들을 좋아하게 됐다. 브람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생의 따뜻함이 클라리넷 곡들에 녹아 있다. 말년에 주위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창작력에 부족함을 느껴 조용하게 지내려던 그 시기에 브람스는 뮐펠트의 클라리넷 연주를 듣고 클라리넷곡 4곡을 작곡했다. 브람스와 뮐펠트, 이 둘이 직접 이 곡들을 연주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 뮐펠트는 궁정의 바이올린 주자였다. 그런데 독학으로 클라리넷을 공부하여 궁정의 클라리넷 제1주자가 된 사람이다.
브람스는 클라리넷 소리를 ‘클라리넷 아가씨’라고 불렀다. 나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2번 1악장을 좋아한다. ‘알레그로 아마빌레(빠르고 정답게)’ 지시어가 있는, 평화롭고 달콤한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나의 친구 클라리넷이 더 많은 인생의 친구들을 소개시켜주고, 이어줄 것 같다. 나이는 들었지만 내가 ‘클라리넷 아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 고맙다 브람스! 고맙다 클라리넷!
<이혜은 (우리 앙상블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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