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별세 존 루이스 의원 운구마차, 55년전 ‘셀마 행진’ 현장 들러
▶ KKK 회원 이름 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존 루이스’로 개명 여론도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흑인 민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차별반대 운동의 상징과 같은 앨라배마주 셀마의 다리를 마지막으로 건넜다.
55년 전 루이스 의원을 비롯한 흑인차별 반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며 '피의 일요일'을 초래한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다. 미국에서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회원의 이름을 딴 이 다리를 루이스의 이름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요일인 26일 루이스 의원의 시신을 담은 관이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에 실려 장미꽃잎이 뿌려진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천천히 건넜다.
앨라배마주 경찰은 경례로 경의를 표했다. 55년 전 같은 자리에서 스물 다섯살의 청년 루이스 의원을 비롯한 흑인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고 곤봉을 휘둘렀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거인의 가는 길을 지키러 나온 이들이 '승리는 우리 손에'를 외쳤다. 흑인 민권운동이 불붙은 1960년대에 널리 쓰인 구호다.
1965년 3월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있었던 '셀마 행진'은 흑인 민권운동이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25세였던 루이스 의원은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 의장을 맡아 600명의 시위대를 이끌었다. 이내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앨라배마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됐고 루이스 의원도 두개골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루이스 의원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경찰의 곤봉에 맞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돼 여론의 분노를 촉발하기도 했다.
루이스 의원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등과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6인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셀마 행진 50주년을 기념한 행진을 재연할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바로 옆에 선 것도 루이스 의원이었다.
미국에서는 루이스 의원의 이름을 따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의 이름을 바꾸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현재 다리에 다름 아닌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의 구성원이었던 인물의 이름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의원을 추모하는 6일간의 장례는 전날부터 시작해 30일 킹 목사가 설교하던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침례교회에서 마무리된다. 루이스 의원의 시신은 그사이 워싱턴DC의 의회의사당에도 안치돼 추모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연합뉴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힌국의 민주주의 운동에 집안의 아들과 딸을 잃어 버린 가족들이 많지요. 민주주의가 무어길래....보상 없이... 죽게 두들겨 맞아 병신되어 사는 남자 많지요. 알랑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