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9월의 어느 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베이브리지를 건너자 어스름하던 저녁이 깜깜해지고, 달빛을 받은 도로는 적요한 멋이 있었다. 청아하면서도 고즈넉한 운치가 있던 밤에 운전을 하던 나는 그만 ‘아’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유난히 큰 달, 잡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 커다란 달이 바로 앞에 있었다. 질 좋은 놋쇠를 녹여 두드린 듯 넓적한 방짜유기같은 달은 불그스레한 금빛을 띠고 있었다. 신비롭고도 커다란 달이 그렇게 내 앞에 왔다.
얼마나 갔을까. 달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문득 들어오는 생소한 풍경에, 집을 한참이나 지나온 것을 알았다. 어이없이 차를 돌려 가던 길에 내 왼쪽 어깨 위로 자리를 바꾼 달은, 은은한 질감이 빚어낸 빛의 오라로 말을 걸고 있었다. 일정한 높이의 배음으로 조화롭고 부드러운 소리의 달을 이끌리듯 따라가다, 황급히 차를 멈추었다. 도착한 곳은 톨플라자였다. 이런, 집을 또 지나치고 말았다. 톨게이트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돌아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달의 이야기를 그저 마음에 간직했다. 귀로 들을 수 없는 말, 마음을 헤쳐봐야 알 수 있던 말들이었다.
일곱 해가 지나고 다시 9월, 계절을 거슬러 온 북풍이 벼랑 끝으로 휘몰아치던 날 달을 보았다. 하늘 높이 떠올라 찬란한 듯 생성되는 투명하고 밝은 달은, 멀어 도달할 길 없는 거리에서 오래 전 시인이 전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 스스로 길이 되어 걸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희망과 절망, 믿음과 의심,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던 인생의 양극단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면서도 달빛이 아름다운 건 그를 밝히는 햇빛이 있어서고, 아픔은 아팠던 이가 알아듣기 마련이다. 해를 품은 영롱한 빛깔로, 겸손하고 다정한 빛으로 이끄시는 흠 없으신 온전한 사랑. 그 영원한 사랑은 북풍이 할퀴고 간 영혼에 숨이 되고, 길이 되고, 삶을 밝혀주는 힘찬 빛의 원천이 된다. 또 7년이 지나고 다시 9월의 11일이다. 모든 고통과 죽음에서 죽고 다시 살아나신 그분께서 물어보신다. “나를 사랑하느냐.” 부족한 마음을 찾으시는 연민과 사랑에 용기내어 대답한다. “예, 제가 사랑하는 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