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 있었다. 창문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커튼을 열지 않아 햇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각자의 방으로, 남편은 회사에서 가져온 컴퓨터를 지하 공간에 설치하고 재택근무로, 나는 다니던 파타임을 그만 두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영악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최소의 공간에 자신들을 구겨넣고 너무나 조용히 각자의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들 과의 접촉도 없었다. 갈 곳도 없었고 방문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쩌다 마주친 사람들이 기침이라도 하면 ‘혹시 저 사람이 코로나 아니야?’ 하고 불신하는 마음이 들었고,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기침이 나오면 ‘저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면 어쩌지?’하는 불편한 관계속에서 살아야 했다. 생존을 위한답시고 먹은 음식물들은 늘 소화되지 않아 속이 더부룩했다.
역사 책 속에 재앙으로 숨져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활자 속에만 존재했었다. 내가 접하지 않았던 과거였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앙이 악몽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았을 때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역사 속 한 페이지가 되어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만 같았던 일이 현실임을 피부로 실감하게 되면서부터 까닭을 알 수 없는 배앓이가 시작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잘 먹다가 갑자기 입맛이 떨어지고, 깔깔깔 웃다가도 더 이상 웃지 못하고 아이들이 공부대신 컴퓨터로 게임을 해도 하지 말라는 말 대신 그냥 지나치게 되고, 재미난 드라마를 보다가도 중간에서 꺼버리고, 집안이 어지러워져도 나중으로 미루게 되고, 텃밭에 심은 토마토가 썩도록 따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홀린 듯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익숙한 동네 길을 돌다가 어느 새 물오른 가을의 아름다움에 홀려 길가에 차를 세웠다.
해마다 내가 기억하던 가을엔 없었던 색들이 가을 나무에 끼워져 있었다. 그 잎 새의 이름표엔 ‘처절함’ 이라고 써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바람들이 나무들을 스쳐가기 시작하자 잎새들이 눈처럼 허공에서 춤을 추며 떨어지고 있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고 걷는데 발 밑에 깔린 낙엽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이 복문이 되어 내 귓속에 와 박혔다.
“당신은 이해 못해요. 죽음은 죽은 자들의 몫이에요. 살아남은 당신의 몫은 외로움이지요.” 잔인한 진실을 듣고, 초라하게 살아남은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영혼들에게 속삭였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경화 / 밀스테드 로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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