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인데도 한동안 더위가 가시지 않더니 이젠 가을이 짙어지고 날씨도 제법 서늘해졌다. 더워서 선풍기를 켜놓고 잠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젠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놓고 이불을 덮어야 잔다. 그러다 한밤중 더워지면 이불을 차버리고는 새벽녘 다시 추워지면 차버린 이불을 당겨서 덮는다. 사람의 마음이 어쩜 이렇게 간사한지… 이불을 차버리고 덮으며 부모의 사랑도 이불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팔십을 바라보는 친정엄마가 김치와 밑반찬을 해서 갖다 주시길래 뭐하러 힘들게 김치를 해 갖고 오셨느냐고 하니 “내가 공부를 대신해 줄 수는 없고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그러지… 공부하느라 바쁜데 잘 챙겨 먹어”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메시지를 한다. “엄마, 오늘 애기 봐 줄 수 있어?” “좀 멀지만 드라이브 하는 셈치고 오셔서 애기 좀 봐 주시면 안돼요?” 내가 공부한다고 얘기해도 수업을 듣는지, 시험을 보는지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시간이 없고 힘들어도 손주를 봐 주려고 시간을 맞춘다. 할머니를 찾는 우리 손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고 할머니다. 엄마에게 뭔가를 해달라 할 때는 딸이니까 당당하게 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딸에게 뭘 부탁하려면 “미안하지만….” 꼭 토를 달게 된다. 대학에 자녀를 보낸 친구들은 아이들이 부모 크레딧 카드가 필요할 때만 전화한다고 섭섭해한다. 언제든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주고 싶고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당연한 줄 여기고 받는다. 그러다 부모 도움이 필요 없어질 때면 어느새 부모가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부모는 그런 줄 알면서도 계속 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딸에서부터 할머니로 늙어가며 인생을 배우고 사랑을 배운다.
추우면 덮고 더우면 차 버리는 이불 같은 존재. 나도 내 자녀의 이불이고 우리 엄마는 나의 이불이다. 필요할 땐 엄마를 찾고 그렇지 않을 땐 잘 계시겠거니 무심한 나.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이불은 그렇게 자기 쓰임을 다한다. 이 땅의 모든 부모는 그렇게 이불로 살다 가면서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 할 것이다. 나도 부족해서 ‘해야지’ 하고 다짐해도 못하는 말이지만 그런 부모에게 사랑하고 감사한다고 표현하는 자녀가 되면 스산한 바람에도 부모의 가슴속엔 따뜻한 바람이 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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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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