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국악기, 조율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 쌍의 흰 기러기가 받치고 있는 사람의 키를 웃도는 큰 나무틀에 ᄀ자로 된 경석이 두 단으로 나뉘어 열여섯 개가 달려 있다. 암소 뿔로 만든 망치인 각퇴로 옥돌을 치는데 그 소리가 청아하면서 맑기가 그지없다. 고려 예종 11년, 1116년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와 종묘제례악을 비롯한 궁중음악 중 아악(雅樂)에 사용되는 악기인 편경이다.
석경을 배열한 악기라는 뜻의 편경(編磬)은 송나라의 궁중 제례에 쓰이던 악기로 조선 세종 때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악기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송나라의 것은 돌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데다 조선의 악기와는 그 성음도 맞지 않았다. 따라서 세종은 음정과 배열을 정확히 하고 조선 궁궐의 위엄과 상징 모두를 이 악기에 담을 것을 명했다. 이에 1427년, 박연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조선만의 독자적인 첫 편경이 탄생한다.
병자호란 당시 장악원의 음악감독 격인 전악은 모든 악기를 가지고 피난을 갈 수 없었기에 우물 속에 편경의 돌을 숨겨 전란 속에서 편경을 지켰다. 불변의 절대 음을 지닌 편경이 존재한다면 나머지 악기는 편경의 음으로 복원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하에 서였다. 실제로 대전통편에도 전쟁이 나면 편경을 가장 먼저 숨기라 기록되어 있다.
동일한 크기의 돌에 두께만을 달리해 만든 편경은 두께가 두꺼울수록 진동수가 높아 높은음을 내는데, 서양 음계의 기본 도(C)에 해당하는 최저음인 황종부터 한 옥타브 위의 레#(D#) 음을 내는 청협종까지 16 음계를 지닌다.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어지는 형상으로 하늘이 굽어 아래로 덮는다는 의미의 ᄀ자 형태의 기울기도 115도로 깎아 가장 맑은 소리를 내도록 했다. 단순한 구조에 소리 과학을 입힌 것이다. 이 돌로 만든 악기는 다른 국악기처럼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음정과 음색의 변함이 없다. 그 때문에 편경은 절대불변의 악기로 국악기 조율의 기준이 된다. 소리에 과학을 담은 가장 정확한 음색을 지닌 표준 악기, 편경이야말로 탄생 이후 지금까지도 든든하게 국악기를 지탱하고 있다.
자연에서 와 우주 만물의 신앙까지 담고 있는 국악기는 흔히 과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편경에서 볼 수 있듯 뛰어난 과학이 지금껏 우리의 예술과 공존하고 있다.
<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