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동안 눈병으로 고생을 했다. 첫째 날은 눈이 잘 떠지지 않아 웬일인가 싶다가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갈수록 눈은 붓고 가려워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은 병원을 다녀왔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눈만 나오는데 그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시 눈이 안보여서 이렇게 불편한데 평생 볼 수 없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어르신들이 점점 눈이 어두워져 글씨를 잘 읽을 수가 없다고 하실 때, 세월에 장사가 없다지만 일일이 자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얼마나 불편하실까, 나라고 그런 시기가 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세상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으며 사는데 점점 담아야 하는 세상은 좁아지고 혼자만의 세상이 커질 때 얼마나 외로울까… 반면,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읽을 수 있어 마음의 창이라는 말을 하는데 내 눈을 보면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내 마음속에 담겨진 생각은 어떤 것들일까…
진찰을 기다리며 병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환자의 대부분은 연세 드신 분들이었다. 나는 순서를 기다리는 분들의 눈을 자세히 보았다. 그분들의 눈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었다. 각자의 파란만장했던 시간과 세월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눈은 우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내 모습에서도 저런 세월의 흔적을 찾게 되겠지. 그때 나는 마음의 어떤 것을 보여주게 될까? 그럼 지금의 내 눈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을까?
불평보다 감사를, 단점보다 장점을, 거짓된 것보다 참된 것을, 섭섭한 것보다 사랑스럽고 고마운 것을 더 많이 담아내는 그릇이 되면 좋겠다. 이 넓은 세상에 지금도 변함없이 누리고 있는 자연의 혜택에 충분히 감사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음이 새삼 미안하게 느껴졌다. 눈이 있어서 악보도 볼 수 있었고 피아노를 연주하므로 내 삶이 행복했음에 항상 감사하지 못했다. 남은 시간을 살면서 지금보다 더 따뜻한 사람,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순수하고 아름다운 눈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눈병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불편함이 없으면 소중함과 감사함을 깨닫지 못하니 말이다.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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