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저녁, 결혼기념일인 우리 부부를 위해 저녁식사 후 아들이 트럼펫을 들고 우리 앞에 섰다. 엄마 아빠를 위한 음악선물이라며 선사한 노래는 김동률의 ‘취중진담’이었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나 불안해할지도 몰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캠퍼스에서 만난 우리를 연애의 시작으로 이끌었다.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를 이제 20대로 멋지게 성장한 아들이 트럼펫 선율로 들려주니 오랜만에 감회가 한층 새로웠다.
그래, 결혼생활이란 것이 그간 좋았던 날들도 많았지만, 힘들 때는 왜 나만 맘 아프고 고달픈 것일까 원망과 자책도 많이 했고, 투덜거림과 불평 또한 넘쳐났다.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성격과 기질의 차이로 삐지고 서운하기도 했고, 만만치 않은 두 고집 탓에 산전수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나마 집안의 완충재 역할이던 외아들이 대학교로 떠나가고, 감정의 휴지기가 되어주던 긴 출장도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난 이후에는 부부만이 집에 오롯이 남는 일상의 변화가 영 생소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20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 지척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조가 두드러졌던 해라고 볼 수 있다. 각자 무언가 열중하는 시간에는 전혀 터치하지 않는 대신, 끼니 준비나 청소, 장보기 등 일상의 합력이 필요한 부분에는 서로 아이디어와 힘을 언제든지 보탰다. 나는 나대로 내가 잘 참고 인내해서 유지해 온 20여년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게 당신 덕분”임을 순순히 인정해야 했던 특별한 한 해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배우자가 없이는 이제까지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뿐더러 앞으로의 남은 인생 동행길도 마찬가지이리라.
문득 서재의 큰 액자가 내 시선 안에 들어왔다. 비탈진 진흙 자갈밭 위에서 온 힘을 다해 거대한 짐수레를 끌고 가는 깡마른 소 한마리와, 수레 옆과 뒤편에서 힘겹게 지탱하며 밀고 나아가는 두 사람이 생생히 묘사된 동판 부조 액자 위쪽에는 한자로 “동심협력”이라고 새겨져 있다. “취중진담”에서 시작한 연애가 결혼생활을 거쳐가며 이제는 고단한 인생길을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로 “동심협력”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구나 싶었다. 이젠 흰머리 가득한 반백의 중년이 된 남편을 바라보며,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흐뭇한 미소로 마음을 전해보았다.
<채영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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