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분당에서 매년 하는 건강검진을 예상보다 일찍 마치고 미리 봐둔 꽃집으로 직행했다. 완성된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택시로 도착한 분당 근교의 어느 추모공원. 거기서 친절한 기사님의 도움으로 메모지에 적힌 묘역의 위치를 찾고서, “미터기 켜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부탁드린 후 언니가 있는 묘소를 찾아 천천히 다가갔다.
닉네임이 ‘신나는’인 언니와 ‘티라미슈’인 내가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홍콩에, 언니가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때였다. 당시 네이버의 교육 관련 카페에서 알게 되어 온라인 상으로만 교류하다가 난생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조우한 사람이 언니였다. 언니는 10살이나 나보다 많았지만 그 차이를 전혀 못 느낄 만큼 유쾌하고 늘 따뜻했다. 아이의 방학 때마다 갔던 서울에서도 우리는 종종 만났고 언니 따라 여기저기 좋은 자리에도 함께 갔었다.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큰딸에 이어 아들도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유명 리버럴 아츠 대학에 합격하는 소식을 접하며, 초등 아이를 키우던 초보 엄마의 눈에 이 언니는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게 없겠다 싶었다. 언니가 한턱 쏘는 자리에서도 찬란히 빛나는 목걸이를 보며 이 언니는 정말 모든 걸 다 가졌구나 싶었는데, 단 하나 언니가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있었을 줄이야.
얼마 후 언니는 카페에 인사차 글을 하나 올렸다. 사실은 오래 전에 암 진단을 받고 치료차 아들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머물렀던 것이고, 아들 대학 갈 때까지만 살았으면 하는 소원이 드디어 이뤄졌는데, 최근 뼈 전이 진단을 받아 앞으로 몸 상태가 힘들어질 것 같다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글을 남기셨다. 나를 비롯한 지인들은 언니가 그런 상황인 줄 전혀 몰랐었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로 언니는 작은 교회 성가대 지휘로 헌신하며 미국의 자녀들과도 한국서 좋은 시간 가졌다고 간간이 근황을 전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언니의 부고를 미국서 듣고도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지 못해 몇 달 늦게나마 언니를 보러 온 나. “은희 언니. 거기서도 잘 있으시죠? 여기 풍경도 너무 좋으네요. 나중에 우리 하늘에서 다시 만나요.” 인사를 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묵묵히 기다려주신 기사님의 한마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찾아가신 그분이 하늘에서 반갑다고 빗물로 화답하시는가 봐요.”
<채영은 (주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