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대부분의 영화는 스토리 때문인 경우가 많겠지만, 난 음악이나 배경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시즌 2를 끝낸 “버진 리버(virgin river)”라는 드라마도 독특해 상상해 보지 않은 내용이라거나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짜릿한 내용 때문에 인기를 얻었던 건 아니지 싶다. 어디서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 내용을 마음 편한 풍경들에 녹여 낸 것이 인기의 비결이 아닐까 한다. 마을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는 산과 강의 풍경으로 채워진 이 드라마의 인트로는 물론이고, 멜의 조깅 코스였던 출렁다리가 걸쳐진 듯 놓인 폭포수 계곡, 아름드리 레드우드 산책길, 베이커리 트럭이 서 있던 공원까지 장면 장면을 캡처해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도 될 만큼 내용보다 풍경이 더 잊혀지지 않는다.
버진 리버의 그곳과는 차이가 있지만, 나도 새크라멘토 리버와 아메리칸 리버, 두 개의 강이 흐르는 곳에 살고 있다. 하늘을 살피고, 하루가 다르게 화려한 봄빛으로 변하는 숲을 즐기며 십분쯤 걸어 도착하는 아메리칸 리버. 강을 옆에 둔 작은 소래길로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과 계절마다 그 강을 찾는 다양한 새들을 보며 걷다보면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든다.
또 새크라멘토 리버는 다운타운에서 160번 도로를 타고, 12번 도로와 만나는 리오 비스타(Rio Vista)까지만 차로 달려도 큰 강답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여름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토마토 밭과 깔깔거리는 여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노란 해바라기 밭도 볼 수 있고, 바쁘게 흐르는 강물과는 상관없이 낚싯대를 드리운 작은 배의 한가함도 만날 수 있으며, 유명하진 않지만 작아서 더 향긋한 와이너리와 오래된 설탕 정제 공장을 와인 시음장으로 꾸민 올드 슈가 밀(Old Sugar mill) 의 운치도 즐길 수 있다. 크락스버그(Clarksburg)엔 120년을 넘긴 오래된 성당(Saint Joseph’s church)도 있는데, 몸과 맘이 힘들었을 때 나도 한동안 이곳을 찾아 웅성거리는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세월이 담긴 풍경은 사람들에게 종종 큰 위로가 된다. 오늘도 햇빛이 그림을 그린다. 눈에 마음에 그 풍경을 새긴다. 기억에 오래 남을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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