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혼자 있는 낮시간에 아들에게 갑자기 영상통화가 걸려와서 깜짝 놀랐다. 여느 남자애들이 그러하듯 한낮에 먼저 연락해 올 일이 거의 없는데, 게다가 불쑥 영상통화라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받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 사실은 무슨 일이 생겼어” 말을 꺼낸다. “뭔데? 무슨 일인데?”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 진짜 큰일이 생겼어”라고만 반복한다. 이내 살짝 긴장된 엄마 표정을 보더니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리며 “엄마, 진짜 ‘일’이 생겼어요. 샌프란시스코 회사에 최종 합격했어요” 깜짝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웃음 반 눈물 반 통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중인 남편을 기다리며, 서울의 어머님께 바로 전화하여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드렸다. 대학생들의 취업이 쉽지 않은 최근 상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졸업 전에 취업 소식을 전해준 손자를 한껏 칭찬하시던 어머님께서는 “할아버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한탄하셨다.
2019년 초입,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9개월 전, 두 분이 산호세 우리집을 방문하여 하나뿐인 손자와 시간을 보내셨던 때다. 아이가 학교로 떠나기 전날 밤, 우리 내외는 무언가 사기 위해 잠깐 외출을 하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시는 앞에서 트럼펫을 정성껏 연주한 손자를 뿌듯하게 바라보시며, 아버님께서는 “내 건강이 안 좋아서 이번이 마지막 미국 방문일 것 같구나” 하셨다. “아니에요. 2년 후 제 졸업식 때에 꼭 오셔야지요”라고 아이가 힘있게 말씀드리자 두 분이 손자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눈물을 쏟으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아직도 그날을 회상하시며 아이를 기특하다 칭찬하신다.
손자의 대학 졸업식을 그토록 간절히 원하셨던 아버님은 이제 세상에 안 계시고 어머님도 현 상황에 미국 오시기 어려우신지라, 5월 졸업식은 우리 두 내외만 달랑 참석하게 되었다. 학생 1명당 2명 게스트로 한정하고 단과대별로 야외 경기장에서 거리두기로 진행되는 제한적 졸업식이다. 그래도 작년의 온라인 졸업식보단 조금은 나아진 상황이기에, 4년간 아이가 머무른 캠퍼스에 가족 대표로 작별인사를 고하고 돌아오고자 한다.
졸업 이후 사회에 새로운 첫발을 내딛는 나의 아이, 건강하고 듬직한 청년으로 자라나 감사하고, 앞으로도 따뜻한 심성과 굳건한 신앙 위에 깊고깊은 내리사랑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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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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