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빼고는 할 이야기가 없다. 언제 나도 쓰러질까 하는 불안과 공포 속에 사망자와 감염자 숫자 세는 일에 중독이 되어 전화기를 손에서 떼지 못했고, 사람과 사물 모두 의심하고 기피하는 중증환자가 되어 우울했다. 나태해졌고 무기력해졌고 의기소침했다. 백신으로 코로나19는 끝났다고 예언은 하지만, 장기화된 심리적 우울은 ‘코로나 블루’와, 공포와 분노로 표출되는 ‘코로나 레드’라는 마음의 신종 병들을 불러왔다.
일상이 붕괴되고 심신은 피폐해진 2020년이었지만 잃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항상 함께 있을 줄 알았던 인간관계, 자연환경, 건강 등 삶의 소중한 가치들에 대해, 그 어떤 해보다도 많은 생각과 정리를 하며 깨달음이 큰 해였다.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너나없이 확실하게 보며 깊은 깨우침과 함께 오히려 감사가 늘었으니 말이다.
영어 관용구 중에 그런 2020년을 상기시키는 ‘20/20 Hindsight’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시력 측정 시 완전한 시력인 20/20, 그리고 뒤(hind)와 시야(sight)를 뜻하는 hindsight의 합성어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뜻도 있지만, 어떤 일이나 상황은 그 일을 겪은 후 확실히 보인다는 말로 지난 후에야 깨우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속한 실리콘벨리 독서클럽에서 5월에 리뷰 할 책이 류시화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인데, 그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인간의 2020년 생로병사를 위로라도 하듯, 자연은 계절을 순회하며 햇살과 미풍을 싣고 배반 없이 2021년 봄도 우리를 찾아왔다. 이렇게 좋은 날, 삶을 도둑맞았다며 위축되어 억울해하느라 시간을 축내기보다 행복한 생각과 상상의 창을 열기로 하자. 나 또한 세상에 다시 잘 서기 위한 안목과 사기충전을 위해, 기지개 크게 켜며 회복의 창 앞에 섰다. 생명의 푸르른 태동을 배경으로 형형색색 축제가 한창인 봄을 마음껏 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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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씨는 ‘북산책’ 출판사 대표로 ‘김영란의 책으로 보는 세상’ 유튜버이다. 저서로 ‘하룻밤에 읽는 미국 첫 이민 이야기’ ‘책으로 보는 세상’ ‘조국과 여성을 빛낸 불멸의 별 김마리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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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북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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