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월 21일은 ‘부부의 날’로 법정기념일이다. 날짜가 21일인 이유는 둘(2)이 하나(1) 되라는 뜻이라는데, 하늘이 정하지 않고서야 하필 이 한 사람(인간)을 만나 백년이나 가약을 했으니 오죽하면 나라까지 나서 지켜주려 할까?
여자가 남자의 많은 뼈 중 특별히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유는, 팔 밑에 있으니 보호하고 심장과 가까우니 사랑하고 갈비뼈처럼 나란히 걸으라는 해석이다. 그런 환상의 커플,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며칠 전 일이다. 갑자기 옆길에서 튀어나온 차가 우리 차 앞을 끼어들며 사고가 날 뻔했다. 우리에게 앞차는 늘 다툼의 원인으로 남편은 클랙슨(klaxon)을 울렸고 성에 안 찼는지 한 번 더 울리자, 앞차 운전자가 속도를 확 줄이며 우리를 위협했다. 난 남편에게 ‘더 살고 싶어!’를 외치며 화를 냈고 남편은 나에게 대체 누구 편이냐며 열을 냈다. 좋은 남편은 귀머거리요 좋은 아내는 소경이라는데, 남편 귀는 너무 밝고 내 눈은 너무 좋은 것이 흠, 그날도 남편은 ‘남의 편’이었고 남편에게 나는 여편(與便)이 아니었다.
오래 함께 살다 보니 참는 것이 이기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노래하면 부인이 따라한다는 ‘부창부수’도 때와 시간, 장소, 기분이 맞아야 하는 일이 됐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사라지고 익숙한 만큼 가시 돋친 말도 쉬이 하는 이심이체인 것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일의 난리통에도 늦게나마 찾은 우리만의 화해기술이 있어 다툼이 밤을 넘기지는 않는다.
몇 년 전 아는 분이 외출 중 뇌출혈로 말 한 마디 못한 채 돌아가셨다. 간 사람을 애도하며 남은 배우자의 심정이 되고 보니, 나갈 때 인사는 나눴는지 전날 다투지는 않았는지 등등 ‘후회와 죄책감’만이 떠올랐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에서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이 순간’뿐, 나는 그때 보험들 듯 남편에게 제안을 했다. ‘누구든 나갈 때 배웅은 잘 하자.’ 웬일로 동의한 남편 덕에 그날 이후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부부생활 십계명을 보니 아홉 개가 ‘하지 말라’이고, 하나만이 ‘사랑으로 부족함을 채워주도록 노력하기’다. 어차피 안 하기는 어려운 일, 불꽃 전시 중에도 누군가 나간다면 따라 나와 착찹하나 의연하게 손 흔드는 부부, ‘부부의 세계’ 주인공 역은 역시 ‘극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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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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