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팝송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는 1975년 에릭 카르멘에 의해 작곡되었다. 이후 1996년 셀린 디옹에 의해 리메이크 되며 이 곡은 다시 한 번 큰 인기를 끌었고, 한국의 한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오빠만세’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곡의 작곡 배경에는 조금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바로 이 곡이 1901년에 작곡된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러시아 태생의 클래식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혁명을 겪으며 미국으로 망명하였고, 다른 음악가들과는 달리 생전에 성공한 음악인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리다가 미국 베벌리힐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그는 성공한 음악가였지만 그에게도 긴 슬럼프의 시간이 있었다. 그 기간이 바로 ‘All By Myself’의 모티브가 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10대 때부터 ‘차이코프스키의 뒤를 잇게 될 음악가’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17세에 작곡해서 19세에 초연했던 피아노 협주곡 1번(Op.1)이 거친 혹평을 받게 된다. 아직은 10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이 일로 우울증을 겪으며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고, 그후 10년 동안 작곡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며,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깊어져 갔다. 그러던 중, 음악 애호가였던 니콜라이 달이라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당신은 다시 작곡을 시작합니다. 다시 멋진 작품을 쓸 것이고, 그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라는 최면치료를 꾸준히 받게 된다. 이 치료법의 효과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써 내려갔고, 그 곡을 완성하게 되면서 10년의 슬럼프를 극복하는 ‘큰 성공’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 곡은 그의 정신과 의사인 니콜라이 달에게 헌정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첫 작품의 실패로 긴 슬럼프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작품을 통해 이를 이겨냈고, 그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Pianistar HJ
<박현지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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