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나가고 난 빈방을 오롯이 나만의 공간으로 채운 뒤, 읽고 싶었던 책들을 책꽂이에 꽂고 노트와 필기도구까지 준비하고 나니, 마치 학창시절로 되돌아 간 느낌이다. 온종일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무심코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다.
학생들만 생활계획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데, 내 몸을 춤추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두 가지쯤은 갖고 있을 숨은 재능을 찾아보자고 작심한다.
매일이 보석 같은 시간일터인데 하루 한번만이라도 기도시간을 갖자고 생각하니 기도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나를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친척이나 친구들이나 오가며 만난 분들 중 건강 문제나 집안 사정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늘어나는 나이 탓이리라.
몇 달 전 코로나로 만날 수 없어 매일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던 또래 지인이 코로나 예방접종을 했느냐고 묻고 난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소식이 끊어져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하였다. 몇 번이나 시도 한 끝에 그녀의 남편이 전화를 받아 하시는 말씀이 “갑자기 스트로크가 와서 지금 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이라 대화가 불가능 하다”는 답변이었다. 친구 한 사람을 졸지에 잃어버린 듯한 허탈감으로 한동안 마음이 울적했었는데, 새삼 건강을 챙기는 계기가 되었다.
온몸을 적절하게 움직이는 데는 걷기운동 만한 것이 없는 듯하다. 매일 매일 산책을 밥 먹듯이 하고 있으니 정신건강도 덩달아 따라 오는 느낌이다. 바깥으로 차를 타고 잠시만 나가면 농장에는 소나 말이 한가로이 노닐고,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과 숲속의 그림 같은 저택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을 한다. 차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 “저건 내 땅,” “저 넓은 호화 저택도 내 집”하며 대리만족을 하다보면 어느덧 부자가 된 느낌이다.
언뜻 스치는 생각은, 옛적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바쁜 와중에 부모님이 계시는 아파트에 들른 어느 날, 아버님이 은근히 하시던 말씀 “애야, 이 근처 고덕동에 땅을 사두면 곧 개발된다는 소문을 복덕방에서 들었다. 여유자금으로 땅을 사두면, 무조건 부자가 된다는구나.” 그러나 당시에는 아이들 교육에만 집중해야 했던 젊은 시절이라 이룰 수 없는 꿈같은 말씀이었다. 이제는 어딜 가던지 한없이 광활한 미국 땅에서 살다 보니 굳이 땅에 연연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은 땅 부자인 것을.
또한 느지막이 찾아온 글공부는 한가한 시간 때마다 좋은 길동무가 되어준다. 오랜 세월 접할 수 없었던 글쓰기는 수많은 형용사와 미사여구를 무디어진 머리 속에서 회전시키다 보면 자연스레 두뇌 노화를 지연시켜주는 영양제로 작동하고 있다고나 할까?
붉게 타오르다 못해 아예 자수정 빛(amethystine)으로 변한 저녁노을을 풍요로운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는 노년의 여유를 만끽하고 싶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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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순 / 우드스톡,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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