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에이저 때 한국전쟁을 겪은 분이 코로나19 셧다운이 전쟁보다 더한 감옥살이라고 하셨다. 백신 맞으라고 재촉하던 약사 친구는 팬데믹이 바로 역병이라고 ‘맞는’ 말을 해서 시간을 조선시대 쯤으로 돌려놓았다. 어려서부터 집을 편안해 했고, 여전히 집에서 잘 놀았는데, 외출을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팬데믹 격리(pandemic quarantine)는 스트레스의 늪이었다.
처음 몇 달은 세끼 식사 해결이 고역이었다. 식구들이 순 한식 식성이고 메뉴도 바꿔야 하니 밥하고 밥먹고 설거지하면 금방 하루가 갔다. 배달도 흔치 않고, 마켓에 가도 줄이 길어 빈손으로 되돌아오고 했으니 우선 식재료가 없었다. 냉동실을 뒤져가며, 아침엔 밥, 점심엔 국수 등 탄수화물 위주로 꼬박 세끼를 먹으니 몸무게로 보답했다.
생활의 대안을 찾을 필요성은 절실한데 어이없게도 의욕이 안생기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감염과 경제에 대한 불안감, 자유를 빼앗긴 허탈감, 혹은 공허감의 무게는 생각보다 커서, 심신을 꽉 누르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재봉틀 놀이도 시들해지고, 다시 시작해서 테크닉적으로 탄력을 받아 좋았던 수채화도 엄두가 안나고, 책도 더이상 재밌지가 않았다. 그 와중에 읽었던 ‘화폐전쟁’이란 책은 세상이 한 금융 세력의 탐욕에 의해 지배되고, 국가들도 그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으며, 한낱 개인은 착취대상일 뿐이란 주장을 했다. 불면의 밤이면 이 바이러스도 그들의 음모가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물 속에 가라앉은 돌멩이처럼 꼼짝 못하고 그렇게 지냈다. 미드, 중국 고장극, 한국영화 등을 보면서 생각을 안하려 했지만, 이 시간이 내 삶의 공백기라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었다. 입력이 없으니 출력될 것도 없어 언어능력을 상실한 듯 조바심도 일었다. 왠지 모를 불신감에 트럼피(Trumpy, 트럼프 지지자)냐는 핀잔도 받아가며 백신을 안맞고 버티다가, 알파를 비롯, 베타, 델타, 감마 등 변이 바이러스들이 속출하기에, 역병을 퇴치하는데 일조하는 셈치고, 7월에 접종을 마쳤다. 효력이 얼마나 갈지 아직 모른다기에 여전히 사기 당하는 기분이나, 어쨌든 준비가 조금은 되었다. 슬슬 물 밖으로 떠올라야 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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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리씨는 숙명여대 영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대학강사를 하다가 1989년 도미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플로리스트(Florist)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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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리(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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