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같은 도시에서 유학하면서 만났다. 나는 남편을 이성 이전에 한 인간으로도 상당히 좋아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단 남편은 착하다. 착한 남자는 따분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 남편은 착하면서도 재미있다. 나랑 유머코드가 맞는다는 말도 된다. 같은 웃음 포인트에 웃을 수 있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웃길 수 있는 건 큰 힘이 된다. 그리고 남편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서 나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휘두르려고 하지 않는, 내가 아는 아마도 유일한 사람이다. 사실 이 중에 하나만 안되어도 문제일 거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약점을 편안하게 노출할 수 있게 해주면서 자기 중심을 잘 잡고 냉철하지만 유쾌하게 조언해주는 남편은 고마운 사람이다.
팬데믹 전에는 남편은 일이 너무 많고 나는 출퇴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쓰느라 주중에는 서로 이야기는커녕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시간도 없었다. 주말엔 서로 직장일을 더 하거나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쌓인 집안일을 하느라 역시 여유롭게 앉아서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집과 컴퓨터에서 멀리 떠나야 한숨 돌리고 못다한 대화도 하고 밀린 시간들을 따라잡기에, 여름 휴가 겨울 휴가를 악착같이 챙겨서 떠나곤 했다.
팬데믹은 우리 사이에도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초기 셧다운 기간, 우리는 방 하나에 서로 등지게 책상 두 개를 놓아 홈 오피스를 꾸미고 몇 주간 내내 같이 앉아서 일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미팅은 얼마나 많고 어떤 스트레스를 받는지, 남편의 헤드셋 너머에 익숙한 목소리가 어느 동료인지도 구별할 수 있게 되면서, 예전엔 막연하게 불만이기만 했던 것들을 차츰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은 덥다, 오늘 애들 점심은 내가 챙겨줄게, 여기 파워포인트 이상한 것 좀 봐줘 등등, 새로운 동료를 얻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출근할 때 퇴근할 때 간혹 재택근무할 때에도 밤낮으로 컴퓨터 앞을 지키고 앉아 변함없이 일하는 남편은 가장 좋은 동료이다.
이번 주도 순 60시간 넘게 일한 우리 남편. 실리콘밸리의 명성은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땀과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바쳐서 쌓아올린 탑인 것을. 착한 데다 재미있고, 현명하고도 성실한 남편의 진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길, 그의 진가가 한껏 빛나길 바란다.
<장희은(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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