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아들 내외는 잠자기 전에 아이에게 동화책 세 권을 읽어준다. 동화책 정도는 나도 읽어줄 수 있는데, 내 발음을 믿지 못해 한국어로 된 동화책만 읽어주게 한다. “할머니 할 말이 있어요. 오늘 할머니 방에서 같이 자도 돼요?” 책 읽기를 마치면 으레 내 귀에 대고 손자가 속삭이는 말이다. “그럼 되고말고, 그런데, 오늘은 선우 방에서 잘까?” 내 방에는 소파가 있어 한창 뛰어내리기를 좋아하는 손자는 땀이 흥건히 나도록 소파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이 방에서 자면 놀 만한 것이 없으니 일찍 재울 수 있을까 하여 되도록 내가 손자 방에서 자기로 했다.
불을 끄고 언제나처럼 뒹굴뒹굴하던 손자가 자는 척하고 있는 나를 흔들더니 불쑥 한마디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지요?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난 것일까? 손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가슴이 턱 막혔다. 가끔 눈물을 삼키고 있을 때, 무엇을 아는 양, 괜찮다며 내 어깨를 토닥거린 적은 있지만, 아이가 먼저 할아버지를 언급한 적은 없었다. “선우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 “Yeah” “할아버지랑 하모니카 불던 거 기억나?” “할아버지가 자동차도 사주고 자전거도 사줬지? 동물원에도 같이 가고 마켓도 갔었지? 다 생각나?” 나는 주섬주섬 남편과 아이가 같이 했던 순간들을 꺼내 보았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제 세 살이라 아무것도 모르려니 했는데 그 어린 마음에도 할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나 보다.
남편은 사무실이며 컴퓨터 바탕화면에 손자들 사진을 도배해 놓았었다.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말하면 입이 귀에 걸렸다. 특히 선우는 첫 손자인 데다 남편을 가장 많이 닮아 유독 이뻐했다.
“할아버지는 지금 천국에 있지요?” 아이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 사진 볼까?” 남편을 보내고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아 열어보지 못했던 사진첩 속 동영상을 눌렀다. 할아버지 얼굴에 장난감 화장품을 바르며 깔깔거리는 자기 모습을 보자 어느새 손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가슴에도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남아 있고, 가족들이 날마다 그리워하는 한 남편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를 잊지 않도록 앞으로도 자주 동영상을 보여줘야겠다.
<김희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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