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총, 균, 쇠’에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란 말이 나온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에서 착안한 법칙이다. 작가는 이 법칙을 유목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의 조상들이 정착화하는데 필요했던 동물의 가축화와 식물의 작물화에 적용했다. 수많은 야생식물이 작물화 되려면 기후와 토지, 수자원, 효용성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경작할 가치가 있는 작물이 되고, 수많은 야생 포유류가 가축화 되려면 고기, 유제품, 운송 수단, 가죽, 털,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 가축화할 효용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법칙은 인생의 많은 부분에 적용될 수 있다. 안나가 얘기했듯,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 애정,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수적인 이 요소들 중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에서 성공을 하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성공한다.
나는 행복한가 자문해본다. 처음 LA에 도착한 후 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주재원으로 먼저 나와 있던 사촌오빠에게 전화를 했었다. “결혼하니까 행복하지”라던 오빠의 물음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는 상황에 떠밀려 결혼을 하고, 한달만에 원형탈모증에 시달릴 정도로 환경이 달라져서, 내게 결혼이란 참고 견뎌야 할 과정이라 생각되던 터였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 첫 크리스마스 파티 때 일이다. 남편이 마련한 아내에 대한 선물 증정식이 있었다. 많은 부부들 중 가장 신혼이었던 내 선물의 부피가 제일 컸다. 개봉 결과 스카프, 향수, 액세서리 등이 주류였던 다른 아내들의 선물에 비해 산만큼 컸던 내 선물은 그 당시 유행하던 식품 선물 세트였다. 참치 통조림도 들어있던 그 상자를 받고 어처구니가 없어 울었다. 이후의 생활은 계속 그 연장선이었다. 내가 왜 실망을 했었는지 아마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남편과 삼십년도 넘게 동행하고 있다.
이제, 숱이 많은 편이었던 내 머리는 오랜 세월동안 새로 자라는 머리카락보다 빠지는 갯수가 훨씬 많아 얄팍하게 변해 있다. 과연 행복한가!
<손주리(플로리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