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살 때, 하루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보내온 팸플릿(pamphlet)에서 뉴 호라이즌이라는 시니어 밴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주 모여서 연습을 하는데, 누구나 원하는 악기를 가지고 오면 기초부터 가르쳐 준단다. 집에 있던 플룻을 들고 가서 소리 내는 것부터 배우며 재미있게 시작을 했다. 얼마 후 중급반이 된 후로는 연말이면 너싱홈 같은 데를 찾아가 크리스마스 캐롤을 중심으로 연주회를 하기도 했다. 듣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모두 시니어였지만,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 플룻 파트는 단합이 잘 되어서, ‘런치번치’라는 이름으로 가끔씩 모여 점심을 같이 하기도 했다. 물론 비용은 철저히 각자 부담이었고.
다음 단계로는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었던 남편과 같이 커뮤니티 칼리지 밴드에 들어갔다. 학점 없이 한 과목만 듣는 대학생이 되어 청년학생들 틈에 끼어 앉아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연습은 직장인들도 올 수 있도록 밤에 해, 연습하러 갈 때면, ‘우리 밤무대에 서러 간다’고 농담도 하곤 했다. 옆에 앉게 된 키 크고 예쁘게 생긴 젊은 백인 여성이랑 친하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플룻을 불고는 어른 되어서 다시 시작했단다. 좀 가깝게 된 후에 직업을 물어보니 경찰관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남편도 경찰이란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괜히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커뮤니티 칼리지라고는 하지만 어찌나 실력들이 좋은지, 이런 조그만 초급대가 이 정도면, 정말 잘한다는 대학들은 어떨까 상상이 안되었다. 솔로 하는 학생이 하도 잘 불길래, 어떻게 하면 그렇게 숨도 안 쉬고 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연습’이라고 답을 했다. 연습이라고는 별로 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젊어서 시작했으면 좀 더 잘 불지 않았을까’ 하며 나이탓만 하고 있던 내게는 충격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후 하루는 그 여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 커뮤니티 칼리지 신문 표지에 우리 밴드가 나왔는데, 마치 내가 독주라고 한 사람처럼 크게 찍힌 사진이 나와 있는 것을 친절하게도 보내준 것이었다. 아마도 그 학교측에서는 이렇게 아시안도 함께 했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여기 와서도 뉴 호라이즌 밴드를 찾아 보았는데 가까운 거리에는 없어, 지금은 그때의 추억만 가지고 있다.
<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