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살 때, 10살 된 딸을 위한 한국말 선생을 구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게 되었다. 우리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도대체 누가, 왜? 하는 호기심에서 만나 보니, 영국인 아빠와 독일인 엄마가, 자기네 애가 둘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입양한 딸 소니야를 위한 선생님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혹시 한국 이름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 엄마가 ‘김희옥’이라고 확실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 아들하고 나이가 같은 희옥이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말을 가르쳤다. 무엇보다도 한글, 한국 문화, 음식 등 한국에 친숙해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희옥이는 영어는 물론, 독일어도 아주 잘 했다. 몇 년 후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서는 내 친구에게 부탁해, 지성으로 음식도 잘 해 먹이곤 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고등학생이 된 희옥이가 한국 입양인 행사에 참가하게 되어 한국을 왔다. 그때 얘기가 친구들하고 이태원을 가니, 상인들이 ‘아니, 한국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렇게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 하느냐’고 흉들을 보는데,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감으로 알겠단다. 도대체 그애들 보고 어떻게 하라고… 어느 날 내 동생네 집에를 같이 갔는데, 어린 조카들이 ‘엄마, 엄마’ 하며 제 엄마를 따라다니는 걸 보고 있던 희옥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물어도 끝까지 대답을 안했다. 대학생이 된 다음에도 다시 한국에 가, 입양 기관들을 통해 생모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결국은 못 찾고 말았단다.
몇 년 후 이메일을 통해 다시 연락이 되었다. 영국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곧 영국 남자랑 결혼을 할 예정인데, 혹시 결혼식에 좀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무척 안타깝게도 사정이 안 되어서 못 가고 말았지만. 그후로는 손편지를 한 번 받았는데, 주소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어쩜 그렇게 악필(?)이었는지 그만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희옥이에게는 어쩌면 입양된 것이 한국에서 자랐던 것보다 훨씬 잘 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양부모 만나 교육도 최고로 잘 받고, 똑똑해서 변호사까지 되었으니, ‘이제 와서 생모는 찾아 무얼 하누?’ 싶다가도, 본인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궁금하다. 좀 덜 번듯하더라도 같은 피를 나눈 부모, 형제, 친척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꽁꽁 숨어 있지는 않을까?
<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