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었던 딸이 어느 날 물었다. “엄마도 옛날에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가 있었어?” “물론이지.” “그럼 그 친구하고 아직도 자주 연락하고 그래?” “글쎄, 몇 년에 한 번 정도?” 딸은 너무도 놀라는 기색이었다. 친한 친구였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멀어지게 될 수도 있나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도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물론 있었다. 3년 내내 붙어 다니고 온갖 비밀도 나누어 가졌던… 그러나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다른 과를 가게 되니 서로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또 각자 결혼도 하고, 그러다 외국에 나와 살게 되니 점점 뜸해지다 못해 이제는 기억과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의 갈피들을 뒤돌아 들춰보면 생각나는 많은 사람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 속에 살아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름도 모르고 그냥 ‘누구 엄마’로만 기억되는 사람들도 있다. 꼭 한 번 다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코 다시는 만나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다 이렇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만나 잠시 같이 걷다가 때가 되면 헤어지고, 비슷한 길을 걷고 있던 새 친구를 만나 또 좀 같이 걷고 하면서 사는 건가 보다.
취미가 비슷해서 같은 주제로 실컷 떠들 수 있는 사람. 나처럼 꽃을 좋아해서 집안에 화초가 가득하고 또 아낌없이 나눠주고 “나도 이거 다 어디 가서 예뻐서 살짝 뜯어온 거야”라고 말하며 같이 웃던 사람. 어떤 사람과는 만나자마자 주파수가 잘 맞는 것처럼 얘기가 잘 되고 비슷한 게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반대로 이상하게 안 맞는 사람도 물론 있다. 세상에 어찌 그렇게 하는 말마다 서로 빗겨 가는지. 그런 사람은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이가 좀 들은 딸에게 물었다. “너는 그때의 그 베스트 프렌드 하고 얼마나 자주 연락하니?” 대답은 그때의 나와 똑같았다. “어디 사는지도 잘 몰라.” 하지만 생각해 보면 굳이 옛날로 돌아가 찾아보지 않아도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남편도 그렇고 형제 자매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모두 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들이 아닐까?
그렇기는 하지만 오늘이라도 그 옛날 단짝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추억담이라도 좀 나누어야 하겠다. 더 늦기 전에.
<김은영(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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