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극중 북한 군인이 한국의 샴푸를 사용한 후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정수리에서 꽃향기가 난다야.” 참 인상적인 대사였습니다. 그런데 요새 들어 저는 그 대사가 매일 떠오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수리에서 나는 꽃향기가 아니라 정수리에서 나는 사춘기 호르몬 냄새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희 열살 큰 딸아이 정수리 냄새가 저의 코를 찌르고 머리를 아프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상하리 만치 점점 강해지는 그 호르몬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몰라 저는 아이에게 자주 머리를 감으라고, 또 샴푸를 많이 써서 감으라고 넌지시 신호를 주었습니다. 아이가 이런 저의 표현에 상처를 받을까봐 눈치를 보면서 나름 자연스럽게 연기하느라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깨달은 것은 이 사춘기 성장 호르몬의 신기한 냄새는 절대 샴푸 향기를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막강한 존재감을 가진 이 호르몬을 감당하느라 그래서 아이들도 힘들고, 아이의 부모들도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제 검던 머리가 점점 흰머리로 채워지듯이, 더이상 저희 큰딸이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제 막 십대 소녀로 성장하는 첫 단계에 있다는 현실이 놀랍습니다. 사실 아이 머리 정수리에서 나는 성장 호르몬의 냄새는 아주 작은 변화입니다.
최근 들어 저와 제 남편은 말로만 듣던 사춘기 증상 중 하나인 내적 변화들이 아이 안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가령 저에게 말대꾸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라는 말에 예민 반응을 보이는 것과, 감정의 동요로 눈물을 자주 보이는 등등 그 모습이 다양합니다. 저는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을 청소년들과 함께 보내 오면서 이런 모습들에 익숙해졌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조심하게 됩니다. 사춘기라는 그 특별한 시간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마음이 얇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지만 여리한 그 마음에 스크래치가 날 수도 부서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코로나로 아직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제 아이를 포함한 이땅의 십대들이 계속해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이 사춘기라는 특별한 시간들을 안전하게, 지혜롭게 통과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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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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