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태평양 경제협력구상’ 선결 과제는
▶ 미, 중 견제 위해 경제동맹 전선 넓혀…유럽과는 ‘무역기술협의회’ 구축하고 아시아 국가 중국 공급망 의존도 줄여야…‘인·태 경제 프레임워크’ 조성 팔 걷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지난해 10월 27일 연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주목받게 됐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중국에 의해 위협받고 있음을 시사한 후 미국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항해의 자유를 지지하는 동맹국 및 파트너와 협력해 IPEF를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IPEF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상임을 밝힌 셈이다.
EAS 한 달 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국의 대외 정책 책임자들이 IPEF 협의차 우리나라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국을 방문해 설명한 내용은 새로이 부상된 이슈에 대한 국제 규범을 확립한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경제 및 기술표준, 공급망 탄력성, 탈 탄소화 및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 등에 대한 협력 사항을 언급하면서 전통적인 무역협정이 아닌 새로운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제시된 사항들은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다. 한마디로 IPEF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내 비구속 협력 규범을 설정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과는 무역기술협의회(TTC) 등을 통해 대(對)중국견제장치를 상당부분 구축했고 올해부터는 아시아에서 비슷한 협력 체제로 IPEF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행정부 시절에 불거졌던 통상 분쟁을 해결해 주는등의 혜택을제공했다.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들은 중국과 긴밀한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IPEF를 추구하려면 미국은 앞으로 보다 정교한 논리와 유인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IPEF의 목표가 명확한 만큼 미국은 당근을 아시아 국가들에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최근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 공급망 의존도 약화, 데이터 관련 규범 강화 등이 IPEF의 핵심 사항이 될 것임을 흘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 미국은 중국을 국제무역 체제에서 배제하는 디커플링 정책을 수립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미국 내 공급망 구축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외국 기업을 억지로 국내로 끌어들여 미국 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상황에서 IPEF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연계되어 형성된 공급망 사슬을 끊도록 요구해봐야 실효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호주 일본등 이미 미국과 대중전선에 합의한 국가를 제외하면 미국의 이러한 대외 전략에 선뜻 동조하는 국가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미국 편에 서서 중국에 해를 끼치는 국가와 기업에 대해서는 보복조치를 가할 수 있는 법을 발효시켰기 때문이다.
희토류를 포함한 수천 가지의 중간재, 관광, 운송 등에서 중국이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은 너무나 많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중국의 수출 규제로 디젤차 운행 중단 위기를 겪었다.
러몬도 상무장관은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를 느끼는 공급망 문제 해결에 IPEF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참여를 요청하고 있지만 미국이 공급망 자국주의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이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은 현재 추진중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과 같은 첨단 품목 몇개로 한정하고 나머지 품목에 대해서는 IPEF 체제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과 공급망 안정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바이든 대통령이 선언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이 추구하는 디커플링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다국적 기업들은 정보통신기술(ICT) 발전 외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의 상품과 서비스 무역자유화, 기술표준, 지식재산권 보호,국제 투자 규범 등을 바탕으로 생산 단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복잡한 형태의 공급망을 구축했다. IPEF가 추구하려는 공급망 안정은 자유로운 글로벌 무역 환경이 전제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WTO가 사실상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이나 미국 멕시코 캐나다협정(USMCA) 등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포스트 WTO의 대안으로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IPEF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상품 분야의 무역자유화 및 다른 무역 규범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것은 다분히 노동자 중심 통상 정책(Worker Centric Trade Policy) 때문이다.
노동자 중심 통상 정책의 핵심은 무역자유화가 포함된 무역협정을 추진하지 않는것이다. 트럼프 전대통령이 강조했던 무역협정이 미국노동자에게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는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이번 IPEF에서도 상품 무역자유화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전 행정부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탈퇴 가능성을 흘리며 멕시코와 캐나다를 압박해 미국노조가 요구했던 노동조항을 USMCA에 포함시켰다.
국제무역협정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어려운 조항을 멕시코와 캐나다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이들 국가의 미국 시장 의존율이 70~80%대로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의존율이 훨씬 더 높다.
상품 무역을 포함한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동자 중심 통상 정책이므로 미국은 협정이라는 용어 대신에 프레임워크로 표현하게 된것이다. 국제관계에서 프레임워크는 일종의 원칙을 의미하며 구속력을 담보하지 않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합의한 방향으로 협력해보자는 취지가 프레임워크이다. 부담이 불투명하니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말 IPEF 참가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바로 이 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CPTPP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이 참여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서둘러만든것이 IPEF일수 있다. 지난해 중반만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는 아시아 국가들과 디지털 통상협정을추구했다. 이것만으로는 지역차원의 호응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연말에 공급망, 표준, 기술 안보 등 다양한 이슈를 IPEF에 담았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상품 무역을 뺀 모든 사항이 프레임워크에 포함돼 있다고 비꼬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이 제시한 내용으로 보면 IPEF는 구속력이 결여돼 있다. 미 헌법 및 관례에 따라 USTR 대표는 미국의 의무를 수반하는 통상 정책을 사전에 의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IPEF는 의회와 협의 없이 발표됐다. IPEF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무역자유화를 포함한 포괄적인 협정이어야 한다. 비전통적인 협정이라고 하면서 일반적인 무역협정의 핵심 내용을 제외하는 것은 깡통 프레임워크를 의미한다. 여기에 전면적인 무역자유화 및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인상 금지 원칙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노동자 중심 통상정책의 철회를 의미하는데, 바이든 행정부의 간판 공약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IPEF는 프레임워크에서 의무 사항이 포함된 국제 협정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는 IPEF가 포스트 WTO 및 디커플링 대응 수단으로 인식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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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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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모두다 믿고 협력하면 너도 나도 이익이되는데 어찌 맨날 쌈박질할 생각만 하는고 참 참참...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