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에 뜻하지 않게 경이로운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게발 선인장이 해마다 화려한 꽃을 피워 준다. 잎이 길고 무성하고 길어서 화분 거치대에 올려놓은 채 때로는 며칠씩 물주기를 잊고 지내기도 한다. 어느 날 게발 선인장에 물을 주려고 하던 순간, 나도 모를 탄성을 질렀다. 선인장 잎 사이에 머그 잔보다 작은 둥지가 생긴 것도 그러려니와 그 안에 내 새끼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알이 덩그마니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주변을 살펴도 그럴 만한 어미 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장면은 티브이를 통해서나 보았지 태어나 도시 생활만 해온 내게는 진기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그간 새가 날아와 선인장 화분에 앉는 걸 한두 번 보기는 했지만 우리 발코니에는 손님이 잦은 터라 그러려니 했었다. 협소하기 짝이 없는 발코니지만 내가 워낙 화초를 좋아하는 탓인지 비둘기가 날아와 하염없이 난간에 앉았다 가는가 하면 벌새도 놀러와서 화초 주변을 맴돌다 떠나기도 했다. 심지어는 다람쥐도 거실 창 앞에서 앞발을 비비며 놀자 하기도 했다. 그런 터라 설마 화분 위에 어느 녀석이 둥지를 틀고 있으리란 상상은 하지 못했다.
그날부터 나는 기대감에 차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한 개씩 알이 불어나더니 4일째 되는 날부터 어미 새가 품기 시작했다.
배는 하얗고 몸통은 갈색에 목에는 검은 띠를 두른 녀석은 벌새보다는 약간 크고 참새보다는 작았다.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졌지만 실패했다. 매일매일 그 아이들 성장을 들여다보노라니 어미 새와 아빠 새가 번갈아 먹이를 물고 와서 새끼들에게 먹여 주는 기특한 정경도 연출해 주었다. 그 무렵 한국에서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여 죽인 사건이 보도되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x라는 욕이 실감났다.
그럭저럭 날수가 차서 부화된 새는 날로 성장하더니 뜻하지 않은 때 찾아왔듯이 뜻하지 않은 날 날아가 버렸다. 네 마리가 다 이소한 빈 둥지를 바라볼 때마다 허망했다. 새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즐겼을 뿐 손가락 끝 하나 새들을 위해 한 게 없건만, 날아간 뒤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녀석들이 야속했다. 그게 새의 삶이며 인생 또한 오고 감의 연속임을 어쩌랴! 한켠에 빈 둥지를 품은 일그러진 모양새로도 의연한 선인장에게 한 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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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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