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지는 초겨울 저녁이다. 병원 복도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먹구름이 건물 꼭대기를 맴돌고 있다. 옥상 가장자리로 빙 둘러쳐 있는 철망이 눈에 들어온다. ‘왜 저 건물 꼭대기에만 철망이 있을까?’ 어스름 비추이는 건물이 슬퍼 보인다. ‘왜 건물이 슬퍼 보이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가 근무하는 본관 외래 약국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병동마다 보관하는 응급약 저장소에서 기한이 지난 약들을 체크해야 했기에 그 건물로 가야 했다. 정신병동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특별 비밀 열쇠를 사용해야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엘리베이터 안은 좁았고 어두침침했다. 시간이 흐르자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정지하면서 문이 열린다.
단발머리 동양 여자아이가 소리 지르며 울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저 아이는 어쩌다가 이런 곳에 와 있을까?’ 달래보았지만 여전히 울고 있었나 보다. 모두들 하던 일들만 계속하고 있다. 복도 벽쪽으로 병실이 나란히 붙어 있다. 병실 유리창을 통하여 뚫어지게 나를 보고 있는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압도하며 끌어당기는 듯한 눈빛에 잠시 몸을 떨어야 했다. 서로가 전혀 말하지 않았는데 어떤 에너지가 나를 끌어당기고 순간적으로 몸까지 떨게 했는지 궁금해진다. 댄 화이트가 샌프란시스코 성모병원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만남이었다.
1978년 11월 조지 모스코니 샌프란시스코 시장과 하비 밀스 SF시의원이 화이트에게 암살당했다. 전직 경찰관, 그리고 소방관으로도 근무했던 화이트는 모스코니가 시장이었을 때 그 또한 SF시의원으로 일했다. 화이트는 1984년 감옥에서 가석방되었으나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1985년 자살하였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직장에서 의견 대립으로 왕따 당한 것 같다. 그 분노로 모스코니와 밀크를 죽였다. 물론 살인은 큰 죄고 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럼에도 그가 자살하였다고 하니 마음이 안타깝다. 그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화이트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병원의 환자로 처방약을 주며 돌보던 환자여서일까? 남들이 다들 미워해도 덩달아 미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일까? 옥상에 철망이 쳐져 있는 것은 정신병동 환자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그 건물이 왜 그리 슬퍼 보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를 갈 때마다 시장에게 총을 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화이트가 떠오른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후회와 외로움으로 살아야만 했던 삶의 비애가 먹구름같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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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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