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냐?’라는 질문은 미국에서 사회생활하면서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그 말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늘 모자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에 나의 코치가 뜬금없이 던진 ‘너가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으로 이 고민은 더 깊어졌다. 내가 뭘 좋아하지?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나의 무게 중심이 확 풀린 느낌을 받았다. 나에 대한 성찰 없이 바쁘게 나는 뛰어다니고 다른 사람이 정한 가치에 나를 맞추려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나는 존재가 희미해졌던 것이다.
인정받음은 무엇일까? 내가 추구했던 인정은 객관적인 기준도 모호하고 정확히 짚을 수 없는 카더라라는 막연한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불특정 다수에 의한 기준이라면, 좋은 학교, 좋은 집, 좋은 직장 등이 있다. 회사에서의 인정받음은 상사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은 이 기준을 채울 수도 있지만 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에 정신적으로 허탈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되지 않았을 때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요인들(주위에 더 잘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 등등)에 의해서도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 인정을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외면할까 같은 불안감도 생기고 너무 힘을 많이 써서 오히려 번아웃(burn out)이 생기기도 한다.
왜 인정에 대해서 힘들어 할까? 그건 인정의 기준이 타인에게 있고 기준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정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영업의 예를 들면 인정의 기준은 판매량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지만 다른 영역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업과 같이 실질적인 목표를 인정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싶다. 마치 일년에 책을 10권 읽으면 인정을 해주자 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기준은 내가 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이 정한 기준에 맞추려면 현실과의 거리가 느껴지면서 나를 자꾸 비하하게 된다. 가끔씩 성취도 하겠지만 안될 때는 나에 대한 실망으로 더 힘들어진다.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넘사벽인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기에 더더욱 내가 만든 기준에 나를 인정하고 그 과정을 축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걸맞는 인정받음이며 이를 통해 나는 원하는 방향으로 한걸음씩 더 나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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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임주(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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