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을 내 의지와는 별개로 잃어버리게 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육체의 질병은 본인인 내가 제일 힘들지만, 정신적인 질병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다. 치매로 인한 사고가 그 예(例)이다.
74세로 나와 띠동갑인 그분은, 자그만 체구에 눈 한쪽을 어렸을 때의 사고로 거의 실명했고 다른 한쪽은 백내장으로 인해 시력이 온전치 못한 여자분이다. 한국 여대 최고학부 E 대학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재원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치매로 급작스럽게 나이 42살에 머물고 있는 그분이 오늘 사고를 쳤다. 양로원에서 아침식사 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CCTV로 확인된 것은 집 밖으로 조용히 걸어나간 아침 9시 45분. 그 이후 6시간 가량의 행적이 잡히지 않아 모두들 안절부절 소동을 피웠다. 경찰이 양로원 주변으로 총출동하고 헬리콥터 2대가 뜨고, 심지어 사용하던 베개에 남아있는 체취를 경찰견에게 맡게 한 다음 주변을 샅샅이 찾았는데 도무지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가, 어느 백인 남성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구글을 통한 연락처를 찾아 소식을 전해옴으로써 일단락 지은 게 사건의 전말이다.
문제는 이 같은 소동과 관련해 그분은 기억을 전혀 못한다는 것이다. 천연덕스럽게 자기는 밖으로 나간 적도 없고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경찰이 자기를 병원으로 데려왔느냐고 물을 뿐이었다. 점심도 거른 채 숲길을 헤매었던지 손톱 밑의 흙부스러기, 옷자락에 묻은 먼지자국, 신발 안 수북한 나뭇가지와 작은 돌멩이가 명확한데도 본인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함에랴. 오히려 내게 창피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본인은 조용히 있다가 죽으려는데 이런 사고를 친 거냐고 되려 묻는다. 그냥 헛웃음만 실없게 나왔다.
2021년 앤소니 홉킨스 주연의 영화 ‘The Father’를 보면서,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다양한 정신적 관점의 변화를 눈여겨보았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서서히 잃어가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커다란 아이로 변해가는 모습이, 내게는 충격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이생진 시인의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아내와 나 사이’) 역시 치매로 인한 아픈 노년의 현상을 그린다.
어쩌면 우리는 잊혀가는 존재로 남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한 대로 삶을 객관적으로 반추해 가며 조심스럽게 기억을 지키다가 예쁘고 품격있게 마무리하고 싶음은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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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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