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려서 민첩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늘 가방을 집어던지고 민첩하게 테이블 다리를 닦았다. 둘째딸로 태어났다고 구박하시던 할머니조차 결국은 그런 나를 제일 이뻐하다가 돌아가셨다. 귀한 남동생 옆에서 생존하려면 재빠르게 많은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걸 그 어린나이에도 알았던 것 같다.
평생을 바삐 살았고 30대 중반에 미국에 오게 되서는 많은 것들을 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한번에 두세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죄책감에 힘들어 했다. 열심히 사는 방법만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빨리 달리던 기차의 엔진이 새까맣게 타버려 멈춘듯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에 깊은 병을 얻었다.
몸의 치료는 그렇다 치고 마음의 병으로 집밖에 나갈 수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긴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세상에서는 잊혀진 듯 무척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동안 나의 내부는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일들(doing)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그냥 내가 나로 존재(being) 할 수 있었던 용기는 당시 곁에 함께 있어 준 한 분의 상담사 선생님 때문이었다. 나는 달리고 싶지 않았고 아니 애초에 내가 기차가 아닌 자전거였다는 사실. 도착지에 빨리가는 것 보다 주변 구경도 하고 바람 냄새를 맡아야 살 수 있는 사람이였다는 것을… 물론 어떤 내담자 분들은 자신이 작은 돛단배라고 생각하시는데 정작 항공모함이신 경우도 있다.
진짜 자기를 만나는 일은 신나기도 하지만 변화라는 것 자체는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이렇게 필자는 치유의 경험으로 상담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상담을 찾아 오시는 분들 중에 자신의 문제가 빠르게 해결 되지 않음에 실망하시는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상담사는 간혹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고 이해하고 가장 진실되게 함께 있어주는 그 시간을 통해 내담자들은 자신의 내면과 직접 만나고 접촉하며 자신을 찾아 나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인내 하며 있어줄 ‘사람'이다.
S(slow) Pace(천천히 가는 속도, 진도) 라는 뜻을 가진 S_PACE(스페이스) 라는 곳이 필자가 내담자를 만나는 진정한 공간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자신의 삶의 속도를 쳐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위기가 아니고 기회이다. 세상의 속도가 아닌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는 기회. 자신이 누구인가 알게된 사람은 결국 문제의 답과 해결할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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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 / 미술심리상담사, VA (스페이스-구 좋은마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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