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미수출 전략 수립 골머리
▶ 칩 수출량·미 생산량 맞춰야 비관세
▶ 대미 투자액 적은 하이닉스에 불리
▶ 국내 의약품 관세 일·EU의 6.5배
▶ 수시로 바뀌는 미에 대응 쉽잖아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한국 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 당장 수출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는 데 이어 전자제품에 들어간 반도체 수에 따라 관세를 물리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여기에 미국 내 칩 생산량과 수입량이 ‘1대1’로 매칭되지 않을 때 품목관세를 매길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 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미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 정부가 불과 한 달 전에 밝힌 입장마저 손쉽게 뒤집으면서 국내 기업들은 대미 전략 수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8일 국내 반도체 및 가전 업계는 미국 정부가 해당 산업과 관련해 새로운 관세 부과 기준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에 일제히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 미국 행정부 소식통의 말을 빌려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칩 생산량과 수입량이 1대1로 일치하기를 원한다”며 “미국 생산과 수입량의 1대1 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품목관세를 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지난달 미국 현지에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겠다던 기존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압박 수위가 훨씬 높아진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애플의 대미 시설 투자 계획 발표 행사에서 “미국 내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반도체 관세를 면제해주겠다”고 밝혀 삼성전자(005930) 등 국내 기업들도 한숨을 돌렸으나 말이 바뀌며 추가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내 반도체 기업 중에서는 엔비디아 등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활발히 납품하는 SK하이닉스(000660)에 타격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4000억 원)를 들여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첨단 패키징 팹을 지을 예정이다. 이는 370억 달러(약 51조 6000억 원)를 들인 삼성전자나 1650억 달러(약 231조 원)를 투자하는 TSMC에 비해 투자 규모가 작다. 현지 생산이 많아야 관세 부과가 적어지는 구조에서는 불리할 수 있다.
가전·스마트폰 등 전자제품 제조 회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 정부가 수입 전자기기에 대해 내장된 반도체 칩 개수를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가전제품에 대한 품목관세 기준이 반도체 개수가 되면 인공지능(AI) 기능을 전면에 내세워온 국내 기업들이 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삼성·LG는 날로 치열해지는 가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AI 가전’을 차별화 포인트로 정하고 이에 상응해 가전에 반도체 탑재를 늘리고 고성능 반도체 비중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제약 업계는 당장 다음 달부터가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25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생산 시설을 미국에 건설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 10월 1일부터 브랜드 또는 특허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150%의 고율 관세 부과가 2027년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당장의 일이 됐다. 한국 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 유럽·일본 회사들이 고율 관세를 면하게 된 것도 불리한 지점이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유럽연합(EU)과 일본은 미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하면서 의약품에 대해 최혜국대우를 받고 15% 상한의 관세율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기업이 무는 관세가 일본·EU의 6.5배에 이르게 된다.
국내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지만 뾰족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생산기지를 짓는 방법이 가장 좋겠지만 현지 생산 확대가 쉽지만은 않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으로 공장 건설 비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늘어나는 현지 인건비도 부담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경우 너도나도 현지 공장 인수에 나서면서 인수 비용도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시로 바뀌는 미 행정부의 입장이 중장기적인 대응책 마련을 힘들게 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8월에도 곧 반도체 품목관세가 발표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내용만 나올 뿐 확정된 게 없다”며 “정책의 수위도 중요하지만 불투명한 대외 환경이 이어지며 중요한 경영 결정이 속도감 있게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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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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