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체 느리고 오래 걸리는 사람이다. 지금 생의 속도가 과속인듯 하지만, 실은 그 안에서 나는 되도록 느리게 걷고 자주 먼데를 보고 오래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거다. 예술로 글을 쓰고 강의를 하게 된 것은. 예술은 저절로 한껏 느려지게 하고, 오롯이 힘껏 응시하게 하고, 모든 물성에서 심성을 찾아내게 하므로.
유년에도 오도카니 들여다보길 좋아했다. 응접실 그림부터 다락방 물건들, 정릉집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던 양옥집들 빨래며 저 멀리 보이던 북한산 바위들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줄곧 응시했다. 그리 바라보는 동안 온갖 상상들이 구름처럼 부풀고 새처럼 날아다녔다.
오래된 찻잔에서 할머니의 다정을 만났다. 아끼며 몇 번 내놓지도 않았을 노리다케 찻잔 세트. 영롱은 사라졌지만 귀히 대접받은 것들의 기품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맑은 차를 가만가만 따르다보면 어지러운 마음이 투명해졌다.
오래 전 그림에서는 옛사람들의 인생을 보았다.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 관폭도에 담긴 선비의 담담한 눈빛에서 삶이란 이렇게 관조하고 성찰하는 것이로구나 건너보는 눈길과 마음을 배웠다.
저 아래 보이는 양옥집 펄럭이는 빨래들을 보며 그 집 사람들의 다정한 화목을 떠올렸고, 먼 데 늘 그자리 우뚝한 바위를 보며 존재의 본질같은 걸 떠올렸다. 잔망스럽게도 내가 죽어도 세상 모든 것들은 아무 일 없이 우직할거란 생각을 했고, 억울했지만 덧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그래서 아등바등할 거 없다고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요즘의 우리는 너무 빠르게 판단하고 단정한다. 딱 보면 안다고, 촉을 믿는다고도 자신한다. 과연 그럴까. 내 안에 무수히 많은 시간의 집적과 사랑의 기억이 켜켜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삶이라는 큰 숲을 가꾸고 있다. 그 숲엔 아름드리 나무같은 사랑도 있고, 짙은 이끼같은 슬픔도 있고,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늪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마주칠지 모른다. 큰 보아뱀과 싸우고 있을 때 나를 본다면 저리 사나운 이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돌릴지 모른다. 시커먼 늪에 빠져 안간힘을 쓸 때 나를 만난다면 저리 여유없는 이는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느리게 봐줘야 한다. 기다려줘야 한다. 내가 그렇듯 당신도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 누구나 소중한 자기 앞의 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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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주)즐거운 예감 한점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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