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8월 3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 등 3척의 배를 이끌고 스페인 항구를 떠났다. 이사벨 여왕과 맺은 ‘산타페 협약’은 든든한 탐험 밑천이 됐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를 자극한 것은 ‘동방견문록’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였다.
13세기 이탈리아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을 밑줄을 그어 가며 읽은 콜럼버스는 몽골제국의 쿠빌라이 칸을 만날 상상에 빠졌다. 그의 항해일지에는 “이제 그레이트 칸을 만나러 간다”는 구절이 많이 나온다.
콜럼버스는 지도 제작자였던 장인에게서 각종 해도 등을 얻었는데 스리랑카와 말레이반도를 넘어 중국까지 들어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특히 전율했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힌 그의 모험은 스페인을 패권 국가로 등극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역사의 큰 물줄기에는 명(明)과 암(暗)이 공존하는 법. 땅과 황금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홀로코스트’가 자행됐다. 금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족을 잘랐고 노예로 팔아넘겼다. 도망친 원주민은 사냥하듯 살해했다. 유럽인들의 ‘총·균·쇠’는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지 150년 만에 원주민 인구의 3분의 2가 사라졌다. 유럽인에게는 신대륙의 발견이었지만 원주민에게는 구대륙의 살육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콜럼버스 동상을 백악관 경내에 설치했다. 2020년 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숨지며 촉발된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때 미국 전역에서 콜럼버스 동상이 파괴·철거됐다.
트럼프의 ‘콜럼버스 영웅 만들기’ 작업은 올해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문화 전쟁’의 성격이 짙다. 한국에서도 독립운동가 홍범도와 음악가 정율성,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의 동상 설치와 이전을 놓고 뜨거운 설전이 있었다. 바야흐로 ‘정치적 올바름(PC)’ 논란이 동상 설치의 또 다른 준거가 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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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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