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 차방에 앉아서 소리 없이 남한강 북한강의 결합을 바라보는 일, 차통(茶桶)에서 마른찻잎 덜어 낼 때 귓밥처럼 쌓여있던 잡음도 지워가는 일, 너무 뜨겁지도 않게 너무…
[2013-12-31]바슐라르를 읽다가 갑자기 부엌으로 가서 김장김치 한 포기를 썰지도 않고 죽죽 찢어 서서 먹는다 입안에 가득 한겨울 시린 배추밭이 들어온다 새파란 무청 줄지어선 무밭도 들어오…
[2013-12-26]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하나 내게 있으니 때로는 가슴 아린 그리움이 따습기 때문 그러고 보니 행복이다 주고 싶은 마음 다 못 주었으…
[2013-12-24]그애를만났다 예전처럼 말이없었다 말없음이마치자기의 미덕인양 다소곳 했다 오월이무르익는 층층나무그늘밑 쬐끄만 풀꽃처럼 -김창재 (시집: 카타콤에서) ‘벙…
[2013-12-19]몇 년 전, 타일러스벅 근처 노천광에서 일했었거든. 하루는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두 시경엔 세 자가 내린거야. “집엘 가겠습니다”라고 십장에게 말했지. 십장이“ …
[2013-12-17]대왕고래 뱃속 같은 썰렁한 지하도에 아저씨 몇 사람이 새우잠을 자고 있다. 취한 듯 그 옆에 누운 눈물 글썽한 소주병들. -신현배 (아동문학가) ‘노숙자’ …
[2013-12-12]꽃의 안부부터 물었다 굳이 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았다 양봉가 이씨는 꽃을 따라 북상 중인데 시방 안산에서 꿀을 받고 있단다 뒷산을 올려다보니 아카시아가 꽃망…
[2013-12-10]울고불고 치사한 이승의 사랑일랑 그만 끝을 내고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 한 몸의 돌쩌귀로 환생하자 그대는 문설주의 암짝이 되고 나는 문짝의 수짝이 되어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
[2013-12-05]즐거운 사람에게 겨울이 오면 눈보라는 좋겠다 폭설로 무너져 내릴 듯 눈 속에 가라앉은 지붕들은 좋겠다 폭설에 막혀 건널 수 없게 되는 다리는 좋겠다 겨울 강은 좋겠…
[2013-12-03]강변에서 내가 사는 작은 오막살이집까지 이르는 숲길 사이에 어느 하루 마음먹고 나무계단 하나만들었습니다 밟으면 삐걱이는 나무 울음소리가 산뻐꾸기 울음 소리보다 듣기 …
[2013-11-21]우리는 초대장 없이 같은 숲에 모여들었다. 봄에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옮겨 심어 시절의 문란을 풍미했고 여름에는 말과 과실을 바꿔 침묵이 동그랗게 잘 여물도록 했다. 가을에는 최선…
[2013-11-19]하루는 아내가 환자가 되고 내가 보호자 노릇을 하고 또 하루는 내가 환자가 되고 아내가 보호자 노릇을 한다 돌아가는 길에 짬이 나면 길거리 벤치에 앉아 바쁘게 흘러가는…
[2013-11-14]달걀이 아직 따뜻할 동안만이라도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사는 세상엔 때로 살구꽃 같은 만남도 있고 단풍잎 같은 이별도 있다 지붕이 기다린 만큼 너는 기다려 …
[2013-11-12]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시골길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 극락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디서 읽었던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잠시 쉰다고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
[2013-11-07]눈가에 웃음이 가득한 남자가 웃음을 멈추고 말한다 “ 아랍어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은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요-” 고통은 머리 뒤쪽과 관계가 있다, 아랍인의 슬픔은…
[2013-10-31]군데군데가 다 해진 골덴 바지에 얼룩진 셔츠에 내가 옷을 모시고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차림새로 휴일 출근을 한다 30년이나 변심 없이 나를 지켜준 노동에 오히려 내…
[2013-10-29]그는 슬픔이 많은 내게 나무 속의 방 한 칸 지어주겠다 말했었네 가을 물색 붉고 고운 오동나무 속에 아무도 모르게 방 한 칸 들이어 같이 살자 말했었네 연푸른 종소리 울…
[2013-10-22]앞 가로변 은행나무 한 그루가 고아처럼 자라고 있다 깨어진 보도블록을 사이에 둔 새마을전파상에서는 슈베르트의 송어가 느릿하게 유영하고 있다 가끔은 지느러미가 손상을 입었는…
[2013-10-17]잔디는 그냥 밟고 마당으로 들어오세요 열쇠는 현관문 손잡이 위쪽 담쟁이넝쿨로 덮인 돌벽 틈새를 더듬어 보시구요 키를 꽂기 전 조그맣게 노크하셔야 합니다 적막이 옷매무새라도 …
[2013-10-15]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
[2013-10-10]미 육군으로 복무하면서 퍼플하트 훈장까지 받은 한인 1.5세 참전군인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추방 지시를 받아 결국 자진 출국하는 안타까…
워싱턴 일원의 공립학교들이 여름방학에 들어간 가운데 페어팩스 등 북버지니아 일원의 공립학교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 급식을 실시한다.인사이드노…
그의 나이 55세. 7세 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와 LA에서 성장, 50년 가까이 미국에 살며 참전 군인으로 전공을 세워 퍼플하트 훈장까지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