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서울에서 직장을 갖고 있는 미주동포 2세들이 아우성친 적이 있다. 미국에 있는 부모들은 이들의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해 했었다. 소동의 발단은 주한 미대사관이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들에게 유사시 어디에 집결해서 어느 비행장으로 달려오라는 전시 대피령 플랜을 전달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북한 핵발전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간에 긴장감이 팽배해 있었다.
미국은 해외에 있는 자국민 보호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신경을 쓰는 나라다. 정세가 조금만 긴장되면 미국민의 해당 지역 여행을 금지시키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비상탈출 플랜을 마련한다.
요즘 한국에서 반미무드가 일어나자 주한미군에 복무중인 한인 2세들이 미국에 있는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지 사정을 이야기하는데 1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많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예하 전 장병들에게 오는 9월24일까지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 이유는 일부 한국인들이 미군을 납치하거나 살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대에 갇혀 있는 2세들이 “한국인들이 왜 반미적이냐”고 묻는데 대해 부모들은 설명을 제대로 못해 주고 있다.
주한미군의 외출 금지령은 지난 6월25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미군소령 피살사건 때문이다. 당시 미군소령은 이태원을 지나다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한국청년에게 뭐라고 말하자 이 청년이 칼을 들고 나와 미군소령을 찌른 것이다.
문제는 미군살해범 청년이 정신질환자라는 점이다. 뚜렷한 살해동기도 없다. 그런데도 미군측은 최근 일고 있는 한국의 반미무드와 연결시켜 이 살인사건을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미국무부는 미국시민들의 한국여행을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으며 공무원, 경제인, 체육인들의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일절 금지시키고 있다. 이 분위기대로 간다면 미국인들의 한국관광이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한미관계 악화는 훨씬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
미군은 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가. 한미방위조약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한미방위조약에 의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미군을 파견하려면 미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군이 한국에 머물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전선에 투입되기 때문에 미국이 자동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정부가 주장해온 것이 “백개의 한미방위조약보다 1개 사단의 미군 주둔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론이다. 그러니까 주한미군은 한반도 전쟁 억제를 위한 일종의 인질인 셈이다.
남북이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트고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으면 미군의 한국 주둔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는데도 미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다. 이유는 미군주둔 자체가 유럽의 정세안정에 밸런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미군주둔의 필요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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