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항상 함께 하겠다던 결혼 서약을 남편은 지켜줬고, 나는 그 정성이 고마워서 살아나려고 애썼습니다."
짧게 깎은 반백의 머리, 유난히 흰 목에 붉은 수술 자국이 선명한 박명신(52)씨는 끝내 울먹였다.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며 포기했던 중병의 아내를 지극한 간호로 되살린 치과의사 최학선(52)씨의 사부곡이 퇴원을 앞둔 아내에게 26년 전 순백의 결혼서약을 상기시킨 것이다.
박씨에게 뇌출혈이 닥친 것은 지난 1월7일 새벽. 잠을 자는데 갑자기 발이 저려오고 속이 울렁거리더니 이내 혀가 굳어지면서 발음이 불분명해졌다. 최씨가 911로 인근 병원에 긴급 이송했을 때 이미 아내의 몸은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 축 늘어진 상태였다. ‘가망이 없다’고 잘라 말하는 의사에게 최씨는 일단 수술을 집도해 달라고 사정했다.
수술하다 죽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첨부했던 당시의 피 마르는 기억을 회고하던 최씨는 그 때 겪은 신성한 체험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수술실 문 앞을 넋 나간 듯 서성이고 있는데 낯모르는 미국인 부부가 오더니 무언가 내 손안에 꼭 쥐어줬어요. 십자가 목걸이더군요."
대수술만 4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기약 없는 혼수상태가 40일 넘게 이어졌다. 최씨는 아내 곁에서 매일 밤샘하면서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기억이 되살아나야 죽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옛날 이야기를 반복했어요. 촉각은 남아있을까 싶어 얼마나 손과 다리를 주무르고 만졌는지 모릅니다"
병원에서는 금지되어 있지만 중국인 의사의 양해를 구해 꾸준히 침도 놓았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침을 놓는데 나무토막처럼 무반응이던 박씨의 손가락이 움찔, 움직였다. 죽은 듯한 혼수상태에 들어간지 43일째 되던 날이었다.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다. 아직 몸의 왼쪽 부분이 마비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지만 말도 할 수 있고 옛 일도 기억할 만큼 상태가 호전됐다. 24일 라팔마 인터커뮤니티 병원의 마지막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박씨의 휠체어는 느리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이들 부부가 7년 연애동안 주고받았던 1,000여통 편지의 교신부호들이 세월과 공간을 넘어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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