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인사회의 산증인”
독립운동가 후손 부부
커뮤니티 사랑방 역할
흥사단 70년사 보관
이민 초기 재미 독립운동가 가문의 후예인 모제스 임(84)·헬렌 임(86)씨 부부는 스스로 자신들이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초기 한인 2세 부부의 가족사는 미주 한인 이민사에서 결코 평범하지 않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모제스 임씨의 부친 임정구 목사는 1919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였고 헬렌 임 여사는 3.1운동과 흥사단 활동에 큰 자취를 남긴 가문의 맏딸이며 이들의 손녀는 바로 2002년 체조 세계선수권에 미국 대표로 출전했던 한인 4세 타비샤 임양이다.
모제스씨의 회고에 따르면 부친 임정구 목사는 18세 때인 1904년 하와이 파인애플 농장 노동자로 도미, 1918년 UC버클리 신학과를 졸업해 목사가 됐고 1939년 타계 때까지 주중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복점, 식품점, 세탁소 등을 운영하고 주말에는 오클랜드 한인감리교회를 이끌며 북가주와 중가주 한인들을 찾아가는 목회활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임씨 가문은 3대에 걸쳐 목사 4명을 배출했다. 모제스씨의 두 외숙부 황사용·사성 형제는 이민 초기 감리교회 목사였고 장남 하워드 임씨는 최초의 한인 3세 목사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대한인국민회장을 역임한 황사용 목사는 1920-30년대(추정) 멕시코를 방문, 당시 멕시코 한인들의 비참한 삶을 LA한인사회에 알렸고 이중 일부를 LA에 이주시키는 활동도 전개했다고 전해진다.
헬렌 여사의 부친 강영문 선생은1940년대에 LA 흥사단 사무국장을 맡았던 흥사단의 중심멤버로 헬렌씨 가족은 흥사단소 뒤쪽 가정집에 살면서 많은 유학생들을 재우고 먹였다고 한다. 삼촌 강영소씨는 흥사단의 창립멤버로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13년 5월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단된 흥사단 창단식은 그의 집에서 개최됐을 정도였다. 헬렌 여사는 아직도 흥사단 70년사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또 독립선언 33인중 한명인 박희도 선생이 그의 외삼촌으로 헬렌 여사는 “3.1운동에 깊숙이 관여했던 외삼촌은 경찰에 체포된 뒤 고문을 받아 후유증으로 숨졌다고 어머니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의 외삼촌 하워드 박씨는 1921년 7월 미국 비행협회로부터 개인 비행면허증을 획득한 최초의 한인 비행사였다.
1946년 우체국 점원으로 시작으로 세관 직원을 거쳐 1978년 해군 지원본부 수퍼바이저로 은퇴한 모제스 씨 부부의 삶은 어쩌면 그의 말대로 평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1941년 결혼 이후 63년 동안 한인사회와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 본 이들은 한인사회의 살아있는 역사임에 틀림없다. 모제스씨는 “우리 아버지 세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선구자들이었다”며 “그 분들이 이룬 토대에서 젊은 세대들이 한국과 미국에 보탬이 되는 큰 일을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의헌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