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컴퓨터를 켜고 이승엽 선수가 밤사이 홈런 한방을 날려 아시아 기록을 깼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오늘도 아니구나 그런 날이면 소화도 안 되는 것 같고 무언가 개운치가 않았다. 같은 민족 하나만으로도 이런 영향을 받는다는 게 신기하다.
경기(競技)는 상대적이다. 박찬호가 그랬고 김병현이 그랬다. 그 날 겨루어야할 상대 팀의 실력이 엇비슷하다면 일진이 안 좋은 상대를 만나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낚시꾼 옆의 구경꾼처럼 승리의 수혜자가 아니면서도 제것인 냥 좋아하는 나도 한마음이 된다.
상대와 직접 힘을 겨루는 경기만 그런 게 아니다. 서로 아무관계도 없는 냥 제 갈 길만 달리면 되는 줄 아는 마라톤이 그렇고, 자기 공만 잘 닦아 휘 두르면 되는 걸로 아는 골프가 그렇다. 상대와 눈만 마주치지 않을 뿐 곁눈으로 온통 신경 쓰면서도 안 그런 척, 그것도 프로정신으로 나설 입장이면 겉으로는 평안을 가장하지만 매번 죽기 살기다. 그 강도의 차이는 엄청나겠지만 관중도 애간장을 끓이기는 마찬가지다.
손기정 선수가 2시간30분대를 넘겨 우승한 베를린에서, 지난달 28일에는 케냐의 32살 먹은 터갓이 2시간4분55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냈다. 살아갈수록 기록 갱신은 험난하고 힘들어진다. 현대사회는 기록의 시대다. 경제 수치, 일기예보, 수능시험 성적, 어느 것 하나 기록으로 평가되지 않는 것이 없다. 어디 운동경기뿐이랴. 경쟁자가 나만 못한 세상 어디 없을까. 그러나 버거운 상대를 정정당당하게 물리친 승리와 기록이야말로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구경꾼에게까지 더 큰 기쁨을 나누게된다.
세상에는 어처구니없는 기록 갱신이 있다. 요즈음은 금문교에서 자살이 뜸해져 지금까지 몇 명이 다리 아래로 뛰어 내렸냐고 아무데나 물어 볼 수도 없다. 물어보는 나를 사디슴 환자로 여길지 모르니까. 아무튼 강약의 차이가 있을망정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아름다움 앞에서는 제 목숨도 챙기지 못하는 심리가 우리 내면에 있는 듯 싶다. 금문교를 바라보면 흰 안개가 검붉은 다리를 쓰다듬을 때 나신의 여인 앞에 선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아무튼 금문교 난간에 오래 얼쩡거리면 자살기록 갱신선수로 오해받아 사복 경찰이 달려온다. 못 말리는 유혹의 다리임에 틀림없다. 1977년 5월12일에 벌써 597번째가 빠져 죽었다. 26년 전 일이다. 그것도 샌프란시스코 옆 동네 델리시티에 살던 27세 묘령의 여인이 꽃처럼 푸른 바다로 뛰어 내렸다.
금문교가 완성된 날이 1937년 5월24일이니 그녀는 금문교가 만들어진지 꼭 40년 되는 5월에 죽었다. 세상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금문교를 내려다보니 이처럼 아름다운 안식처(?)가 또 있겠는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가 단숨에 뛰어 내린 적도 있다는데, 문제는 그녀 다음 한 달 사이에 세 명이 죽은 데 있다. 두 명은 40년 기록에 신경을 썼다면 그 다음 달인 6월20일 세 번 째 죽은 이는 또 다른 기록 600번째에 맞춘 것은 아닌지. 금문교가 생긴 다음해 1938년 1월28일 제1착으로 자살한 존. 프로호르를 시작으로 600번의 도전(?)이었다.
금문교를 캘리포니아의 꿈을 보여주는 다리라고 한다. 그 꿈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름다움에 대한 도전인가. 금문교에 관한 대부분의 책자에는 자살 기록을 수록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자살을 부추기는 원인 제공자라는 누명이 두려워서 인지 모른다. 사람들이 원치 않는 기록갱신은 죄가 아닌지. 늘어나는 금년도 오클랜드의 살인사건처럼. 그런 기록을 들여다 볼 때면 구경꾼의 입장으로도 괴롭고 불안하다.
목요일 아침 이승엽이 드디어 56번째의 홈런, 국민타자는 해냈다고, 축복이 터지는 장면이 보인다. 그러나 전날 상대팀인 롯데 감독이 공을 맞혀주자는 기사를 보았는데 신인 투수를 내세운 것을 보면 혹시 봐주기라는 작은 음모가 도사린 건 아닌지, 홈런을 친 것이 확실하니 기분 좋게 넘어가자고 다짐을 해봐도 월드컵 축구 스페인과의 경기처럼 찜찜하다.
그러면서 낙엽 한 잎처럼 금문교 푸른 바다에 삶을 던져버린 사람들을 기록 운운하며 가볍게 다룬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훌훌 금문교 아래로 버리는 사람들에게는 기록 같은 건 아기들 장난일수도 있다. 하찮은 삶에 연연하는 우리 같은 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분명 유혹의 꿈(?)이 도사리고있는 듯 싶다. 그게 무얼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