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또 영원한 자유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9.11테러 3주기를 하루 앞둔 10일 참사의 현장인 맨하탄 그라운드제로는 붕괴된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대신할 프리덤타워의 공사가 다음날의 추모식 준비로 잠시 중단된 가운데 20톤 무게의 화강암에 새겨진 초석의 글귀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16에이커에 달하는 그라운드제로에는 여느 공사현장처럼 자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인근 월스트릿과 월드파이낸셜센터에 근무하는 듯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무심히 갈 길을 서두르는 와중에 곳곳에서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등 평온한 모습이었다. 다만 테러 3주기를 앞두고 특집 제작을 위해 방송 관계자들이 이곳 저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바쁘게 취재하는 모습이 평소와는 다른 장면이었다.
그러나 3년 전 이곳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었다.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된 민간 여객기 2대가 110층의 위용을 자랑하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돌진해 불기둥이 솟구쳤고 이어 차례로 두 개의 빌딩이 폭삭 주저앉았다. 여객기 탑승객은 물론 당시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이들을 구조하러 갔던 경찰, 소방관 등 2,74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대의
본토 내 침공 피해였다. 이후 8개월이 넘게 164만 톤의 잔해를 치워야 했고 각종 후유증으로 지난 3년 동안 미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겪어야만 됐다.
지난해 초에는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이민국(INS)과 세관, 교통안전국(TSA) 등 22개 연방기관을 합쳐 17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국토안보부가 발족됐으며 지난 7월에는 9.11테러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15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이라는 직책과 테러 관련 정보의 집합장소 겸 정부 대테러정책 조정 기능을 담당할 대테러센터가 신설되기도 했다.
경제 또한 테러 직격탄을 맞아 2002년 다우존스지수가 7200대로 떨어지는 등 극심한 침체기에 빠졌다가 지난해 말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테러 이전과 비교해 100만 명의 일자리가 줄어든 상태로 당분간 고용지표가 크게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올해 미국내 대학원에 입학을 신청한 외국 학생이 32%나 감소하는 등 외국인에 대한 입국심사 강화로 미국 방문객이 크게 줄어들기도 했다.
또한 테러 희생자 유가족들은 아직까지도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유가족 339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이 밤에 잠을 자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5명중 1명은 2001년 이후 이사를 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3분의1은 직업을 변경했거나 중단했고 배우자를 잃은 사람 중 재혼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반면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더 이상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미증유의 테러 참사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9.11테러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WTC 재건축 계획 마련에 착수했고 지난 7월4일 독립기념 228주년을 맞아 그라운드제로에 독립선언이 선포되던 해인 1776년을 상징하는 1,776피트 높이의 ‘프리덤 타워’가 착공됐다.
2009년 완공 예정인 프리덤 타워는 바다 건너 자유의 여신상과 호응을 이
루도록 설계돼 자유를 향한 미국의 의지와 힘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프리덤 타워 외에도 4개의 대형 빌딩이 2015년까지 그라운드제로에 세워질 계획이다. 같은 날 같은 방법의 테러로 건물 일부가 파괴됐던 워싱턴D.C의 펜타곤은 공사 예상기간을 무려 7개월이나 당겨 11개월만에 복구를 끝내기도 했다.
이제 테러 3주기를 맞은 11일에는 당시의 참상을 잊지 말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추모의식이 미 전역에서 열린다. 뉴욕을 비롯해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와이오밍 등의 주청사에서 추모행사가 열리고 메릴랜드의 락빌에서는 펜타곤 희생자 유가족들의 추모행사, 필라델피아와 라스베가스, 하트포드 등에서는 소방관들의 묵념행사가 진행된다.
이밖에도 저지시티, 보스턴, 오클라호마시티 등에서 추모 행사가 계획돼 있으며 당시의 참상을 알려주는 각종 사진전, 각종 종교행사, 포럼 등이 미 전역에서 열린다.
그라운드제로에서는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참가한 가운데 희생자들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행사로 진행된다. 정오까지 진행되는 이 의식은 납치된 여객기가 2개의 빌딩에 충돌하던 시각과 두 빌딩이 무너진 시간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행사가 잠시 중단되고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9.11 한인유족회는 지난 9
일 추모예배 이외에는 개인 사정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다.
■ 한인유족회 김평겸 회장
아들 죽음 헛되지 않도록 노력
테러로 억울하게 아들을 잃었지만 가족 모두가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9.11테러 때 둘째 아들을 잃었던 한인유족회 김평겸(사진) 회장은 가족에게 닥친 슬픔을 훌륭하게 극복한 한인으로 주위의 칭찬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의 아들 고 김재훈(미국명 앤드류 김·당시 26세)씨는 컬럼비아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9.11테러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 93층에 있던 자산 관리 전문업체 프레드 앨저 매니지먼트사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하다가 참사를 당했다.
김 회장은 가족들과 상의한 결과 차마 앤드류가 남기고 간 돈을 우리가 쓸 수 없다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하늘나라에 있을 앤드류를 위해 가족들이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들이 졸업한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할 예정이었지만 평소 성실했던 고 김재훈씨가 모은 돈이 의외로 많았고 각종 보상금이 합해져 총액이 약 60만달러로 늘어났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 돈으로 지난 2002년 7월 ‘앤드류 김 메모리얼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뉴저지 베다니교회의 우수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평통 에세이 컨테스트 입상자에게도 장학금을 수여했다. 지난 8월에는 뉴욕한국일보사가 특별후원한 미동부 한인테니스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했다. 아들이 생전에 테니스를 즐겨한 이유에서다.
이 같은 소식이 뉴저지 레오니아에 알려지자 타운 정부는 지난 7월 ‘앤드류 김 메모리얼 콘서트 시리즈’를 열었고 앞으로 매년 콘서트를 열어 장학기금 모금 행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타운 의회는 오버펙 공원 내의 테니스 코트를 ‘앤드류 김 메모리얼 코트’로 명명하기로 했으며 ‘앤드류 김 테니스 토너먼트’도 추진 중이다.
한인 관계자들은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한인유족회장을 맡아 다른 가족들을 돌보는데 앞장섰으며 아들이 남긴 유산을 깨끗이 사회에 환원한 김 회장과 가족의 숭고한 정신을 높이 사고 있다.
<장래준 기자>
jraju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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