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자체가 비싼 품목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없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기는 힘들었을지도 모르지요.
한인 보석업계의 대부인 ‘킴스 보석(대표 김남표)’의 성장은 가족간의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이다.김남표 대표와 부인 김종이씨, 처남 윌리엄 임, 처제 크리스 임씨 등이 20여년을 함께 보석에 미쳐 살아왔다.한국에서부터 보석 업체에서 일해왔던 김 대표는 81년 뉴욕에 온 뒤 한인으로는 거의 최초로 보석업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인들의 불모지였던 맨하탄에서 세계적인 티파니 보석을 하청받아 한국의 보석 세공 실력을 알렸다.보석에 대한 안목과 꼼꼼한 세공 기술,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으로 킴스 보석은 급성장 했고 김 대표는 세계적인 뉴욕다이아몬드딜러클럽의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뉴욕다이아몬드딜러클럽의 정회원은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중심지 뉴욕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도매업자의 주 거래소로서 이 클럽의 정식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보석제조업클럽 회원 6명의 재정보증과 뛰어난 거래실적, 흠잡을데 없는 신용기록 등이 필요할 정도로 권위 있는 클럽이다.
킴스보석이 이처럼 보석업계에서 한발 앞서가는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비즈니스를 지켜온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킴스 보석에 처남이 합류한 것은 83년쯤이다. 당시 하와이에서 대학을 다니던 처남을 불러들여 보석 세공 기술을 전수했고 85년에는 한국에서 보석 공장을 운영하던 형 김남진씨도 합류했다.
김남진씨는 10여년동안 함께 근무하다 독립, 실로암보석을 운영했으나 안타깝게 지난해 지병으로 작고했다. 일가족이 함께 보석을 하다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보석업계의 가장 큰 위험 중의 하나인 도난의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오랜동안 함께 일을 하다보니 호흡도 척척 맞아 떨어지기 때
문에 킴스 보석의 장기인 원스탑 세공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킴스 보석은 가족끼리만의 비즈니스로만 그치지 않았다.초창기부터 킴스보석을 통해 기술을 배운 한인 보석업자들의 수는 수십명에 달한다.
보석 구입 등에 필요한 크레딧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도매업소에 추천을 해준 케이스도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 대표는 서로 돕고 살자는 차원에서 보석 세공 기술을 가르쳤고 그 중에서 지금 크게 보
석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비즈니스에서 불편한 점도 있을 지 모른다고 넌지시 말을 건네자 김 대표는 글쎄요 가끔 공과 사의 구분이 없다는 점을 굳이 꼽을까요라며 특유의 편한 웃음을 지었다.
<김주찬 기자> jc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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