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에 속하는 일부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은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폭로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얻으면 뿌듯해 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바로 그 대상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 한다. 이 비밀은 바로 학점이다. 전국 10개의 톱클래스 비즈니스 스쿨 가운데 4곳의 학생들은 자신들 스스로 그리고 학교측이 학점을 구인담당자들에게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정책을 채택하는 곳은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시카고대 등이 포함된다고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최근 보도했다.
하버드·스탠포드·시카고 대학 등 비공개 고수
펜실베니아 와튼 스쿨 상위 25% 성적 공개 검토
“비공개”… 과당 경쟁 막고, 어려운 과목들 수강 활성화
“공개”… 교수·학생 모두 연구 매진, 우수인력 채용 쉬워
학점 비공개 원칙은 지나친 경쟁을 지양하고, 어려운 과목을 듣는데 따르는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비즈니스 스쿨의 생명은 책임감인데 학점 비공개가 바로 이러한 책임감을 손상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란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전국 3위의 비즈니스 스쿨은 펜실베니아 와튼 스쿨의 행정관들, 교직원들, 학생들은 10여년간 고수해 온 학점 비공개 정책에 대해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 학교의 안자니 제인 부학장은 ‘와튼 저널’에 낸 기고를 통해 학점 비공개로 교수들은 학문적으로 열의를 덜 보였고 학생들은 수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며 그 부작용을 꼬집었다. 학교측은 당장 학점 비공개를 전편 폐지하는 게 아니라 전체 학생 가운데 상위 25% 학생의 학점은 공개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제인 부학장에 따르면 펜실베니아 전체 학생의 학점과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의 평균점수를 비교해 보니,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이 떨어졌으며 이들이 학업에 쏟는 시간도 4년만에 22%나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와튼 스쿨에 탁월한 교수 몇 명이 강의를 그만두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교수들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같이 출석을 점검하고 매주 퀴즈를 본다. 또 지각생을 엄격히 선별하고 수업 도중 대화를 하거나 셀폰이 울리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 와튼 스쿨 통계학 교수인 에드워드 조지는 “도로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신호등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일정한 규칙을 정해 준수하도록 하는 것은 대학 교육에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학점 비공개 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은 비단 교수들만이 아니다. 구인담당자들은 유능한 직원을 뽑아야 하는 데 학점을 알 수 없으니 인터뷰를 통해 선발할 수밖에 없다며 볼멘소리다. 면접관들이 사용하는 인터뷰 가운데 사례별 인터뷰 방식이 있다. 학생들의 능력을 요모조모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서 복잡한 사례를 제시해 이를 분석하고 풀어나가는 능력을 보는 것이다.
구직자의 잠재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학창시절 활동했던 클럽에서의 경험을 물어보거나 수강과목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공세를 펴기도 한다. 다트머스 비즈니스 스쿨에서 커리어 개발 프로그램을 관장하고 있는 전직 구인담당자 리처드 맥널티는 “학점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우수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되며 구인담당자들이 해당 학교에 가길 꺼린다”고 그 폐해를 지적한다.
코넬, 듀크, 노스웨스턴 켈로그 스쿨 등 톱클래스 비즈니스 스쿨들은 학점 비공개 정책을 없앴다. 어렵게 취득한 학점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데 반대했다. 로체스터 사이먼 비즈니스 대학원은 학점 공개를 보다 확대할 예정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성적뿐 아니라 팀 프로젝트에서의 성적과 평가도 공개한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세계 자체가 하나의 팀웍이므로 구인담당자들에게 좋은 판별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점 비공개 정책은 닷컴 붐과 함께 뿌리를 내렸다. 비즈니스 졸업자는 학점이 좋든 나쁘든 취업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성적이 저조해도 좋은 베니핏의 직장을 구하는 게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그런데 옛 정책은 존속되고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와튼 스쿨이 학점 비공개 원칙에 변형을 가하면 일파만파가 불 보듯 하다.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하고 싶은 기업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소식이 될 것이다. 학생들과 교수들도 종전보다 더 열심히 가르치고 배울 게 틀림없다. 나쁜 학점이 공개돼 원하는 직장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안됐지만 열심히 실력을 다듬어 좋은 학점을 받았음에도 빛을 보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낭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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