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밤이 늦도록 바느질을 하고 있던 나영은 뉴스 속에 그려진 길고 긴 자동차의 행렬과 울부짖고 있는 난민들의 얼굴이 나올 적마다 일손을 멈췄다. 아주 희미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들려주시던 1.4 후퇴 때의 피난길, 이별의 손을 흔들던 아버지를 원산 부두에 남기고 삼촌과 언니, 오빠, 엄마만이 간신히 LST에 올라 고향을 떠났던 옛 이야기. 어머님은 그때 야속했던 추억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되내시곤 하셨다. 그리고 혹독하리 만치 냉랭했던 원산 앞바다를 나무라셨다.
어머니는 서울에 오셔서 나영을 나으시고 세 남매를 홀로 키우셨다. 그리고 13살 때 나영은 큰아버지를 따라 뉴욕에 왔다. 큰아버지는 상사의 지점장으로 오셔서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허지만 의외로 큰아버지는 나영을 남남처럼 박대를 하셨다. 둘째와 같은 학교의 동급생인 미영은 큰아버지가 직접 학교에까지 태워 주셨지만 나영은 혼자 버스를 탔다. 음식과 용돈도 차별하여 주시는 큰아버지를 큰엄마도 그대로 따랐다. 미영은 고3때 차를 사주셨다. 나영은 일절 불평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영은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추운 겨울에, 전차, 버스를 세 번 씩 갈아타고 학교와 직장을 다녔다. 미영은 시간이 나면 맨하탄의 까페에 가서 재즈와 불루 뮤직에 미쳐있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미영과 나영은 둘 다 학교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그리고 둘 다 대학으로 진학했다. 나영은 장학금을 주는 대학으로, 미영은 비싼 사립학교를 택했다. 물론 기숙사로. 나영은 교수의 배려로 교수집 지하실 방을 얻었다. 미영은 어느새 피아니스트의 집으로 이주를 했다. 어느 날 피아니스트가 나영에게 전화를 하고 미영이를 데리고 가줄 수 있나 라고 간곡히 청했다. 미영이는 잠옷 바람으로 침상에 앉아 있었다. 널려있는 담배꽁초와 타다 남은
마리화나가 나영이를 혼미케 했다. 아름다웠던 미영이는 초점을 일은 눈을 감고 나영이 앞으로 몸을 기댔다.
나영은 영주권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든지 했다. 일년 내내 쉴 수가 없었다. 음식점 매너저로, 어두운 암실에서 사진 현상을 하는 일, 오피스 매너저로. 나영은 미술을 전공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 했다. 예술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큰아버지는 플로리다로 은퇴해 가셨고, 미영이는 아직도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큰 아이가 되어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다.
나영은 한번도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돈을 꾸는 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되었다. 남의 일을 돕고 영주권을 얻자 나영은 자기 가게를 챙겼다. 밤낮으로 일했다. 일을 속성으로 또 똑 부러지게 해냈다. 바느질과 수선을 손에 피가 맺히도록 해냈다. 폽 공군 기지와 82공정대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영은 자기 손이 닿은 군복을 입고 전쟁터에 가는 군인들을 위해 밤새도록 바느질을 하며 그 옷 주인을 위해 기도를 잊지 않았다.
밤 12시가 넘어 전화벨이 울리고, 큰아버지는 낭랑한 목소리로 “얘, 나영아, 여기 플로리다인데 지금 폭풍이 와서 너에게 가고 있다. 기다려라” 하고 전화가 끊겼다. 창밖으로 82공정대가 이동하는 듯 트럭소리가 밤의 적막을 뚫고 진동하고 있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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