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에 ‘부동산 감정사’된 김홍기 씨
한국서 국어교사 하다
40세에 이민 차정비공
은행원변신 부행장까지
삼수끝에 감정사 합격
“30년 더 일할 수 있어”
‘한국에서 국어 교사 → 불혹의 나이에 자동차 정비를 배워 뉴욕으로 이민 → 차량 정비업소에서 일하던중 허리를 다치자 다시 은행원으로 변신 → 1985년 글로벌뱅크 행원으로 시작해 부행장까지 승진 → 1999년 은행 합병으로 명퇴 → 첵캐싱 업소 4년 운영’
올해 70을 맞은 김홍기(미국명 스티브·사진))씨의 이력이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2막으로 부동산 감정사(Real Estate Appraisal)가 됐다.
그의 삶은 항상 ‘스타트’ 라인에 서있었다. 그 덕분에 남들 같으면 집안에 눌러앉을 나이지만 삼수 끝에 부동산 감정사 시험에 합격하고, 지난 9월부터 감정회사에서 견습직원으로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열고 있다.
지난해 10월 첵캐싱 업소를 그만둔 뒤 1년 정도 학원에 다니며 감정사 공부에 몰두해 온 김씨는 “뒷바라지 해주고 생계도 책임져 준 부인과 칠순 노인을 받아 준 글렌 고 사장에게 가장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데는 고 사장의 조언과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글로벌 뱅크에 재직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고 사장은 “솔직히 처음에는 연세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준비과정에서 보여준 열정에 뜻을 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잘 나가던 부행장에서 난데없이 ‘명퇴’란 인생의 쓴맛도 도전의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김씨는 “밤늦게라도 한번 만나 달라고 줄을 서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창과 제자 녀석들도 모두 한 순간에 등을 돌리는데 충격이 적지 않았다”면서 “그때는 앞도 막막했고 세상이 그렇게 야박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손자손녀의 재롱을 볼 나이에 견습직원으로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한 김씨의 꿈은 99세까지 현역으로 일하는 것. 그는 “정년퇴직이 없고, 공인회계사처럼 2,000시간의 훈련을 마쳐야 정식으로 감정사 일을 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30년만 더 일하고 싶다”고 자신감과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또 “남들이 70으로 안 볼 만큼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 일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제각기 다른 건물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일종의 예술”이라고 활짝 웃었다.
■65세에 ‘법정조정인’된 김덕길 씨
40년전 유학생으로 첫발
대학교수·컨설팅사 근무
96년후 LA서 통역사 활동
‘죽어라 공부’ 4월 자격증
“이젠 법정중재인에 도전”
40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 온 김덕길(65·사진)씨.
보스턴 노스이스턴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모교와 보스턴대학에서 연구원 겸 교수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연구소 재직시설 여러 개의 특허를 출원하며 학문과 실생활에 적용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던 김씨는 1982년 상아탑을 벗어나 앤더슨 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학관련 기업 컨설턴트가 그의 직함. 이후 보스턴 지역 미국 기업에서만 10년 넘게 근무한 김씨는 1996년 직장에서 은퇴한 뒤 곧바로 LA로 건너왔다.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해 경제적 부담을 벗게 된 김씨는 이 때부터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인생의 처녀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50대 중반이란 나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전하는 사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믿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첫 번째 도전은 동시 통역사. 보스턴 시절 틈틈이 준비해 따 뒀던 법정통역사 자격증이 큰 도움이 돼 지금도 간간이 법정에 선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영어의 올바른 한글 표기법’이란 책도 펴냈고, 발명가협회 회원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환갑을 훨씬 넘긴 그는 지난해 ‘법정조정인’(Mediator)라는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오랜 미국 생활을 하는 동안 중재 제도를 몰라 법정에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한인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4개월간 밥먹는 시간만 빼놓고 공부만 한 덕분에 올 4월 자격증을 땄다. 같이 학원에 다닌 16명의 학생 중 12명이 시험에 합격했는데, 김씨가 12등이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하루만 지나면 기억이 하나도 안났다”면서 “그래도 합격했으니 이제는 법정중재인(arbitrator)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5년간 조정인으로 일해야 중재인이 될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칠순에 중재인 시험을 보게되지만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집에서 잔소리 안 하고 밖에 나가 돈벌어오니까 부인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는 그동안 쌓아온 한미 양국 인맥을 바탕으로 벤처캐피탈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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