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주부)
새해도 됐고 희망이니 설계니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잘 살아야겠다는 것은 확실한데 가슴을 뚫고 휑하니 지나가는 바람이 인다. 미래는 미래에 남겨주고, 그러면 과거에는 잘살려고 무얼 했는지에 생각이 미치자 어릴 적 동네방네 확성기에서 흘러 나오던 노래 구절이 입가에 맴돈다. ‘잘 살아보세~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하하 그 시절!
점심시간 보리밥에 모자란 콩 개수 맞추느라 친구들 도시락 뒤져서 콩 골라 심어 놓고 두근두근 선생님 검사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지. 나무 젓가락 들고 도봉산에 송충이 잡으러 가던 일, 쥐 잡는 날에 맞춰 잡은 쥐꼬리를 학교에 가져와야 한다는 소문에 눈물 빼며 학교 안 가겠다고 그랬던가. 꽉 차서 문도 닫치지 않은 버스에 매달려 차장 언니에게 구박 받고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었었는데. 태극기 들고 높으신 분 행차에 마중 나가 애국심에 도장 받아와야 했던 일도 있었구나… 등등 잘사는 일에라면 수치심도 감수성도 사치였던 시절의 수많은 일이 떠오른다.
한국에는 요즘 효도 계약서라는 것이 있단다. 이를테면 자식들에게 효도하겠다는 것을 담보로 아파트 계약서를 준다는 것인데 효도 이외에도 손자를 낳으면 준다는 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일제 전기 밥솥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아파트가 만병의 근원이며 만병통치약이다. 엄청난 업그레이드다.
내가 아는 집안 학력 외모 모두 근사한 어느 아가씨의 결혼 조건은 더욱 재미있다. 신랑감이 돈이 많으면 된다는 것인데, 정말? 하고 물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느냐고 정답 확인까지 해준다. 확실하고 솔직하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심각하다. 황금 만능이라는 단어를 들이대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에 편안해 지니 황금은 사랑도 효도도 행복도 도덕도 모두 먹어 치우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웰빙의 시대이다. 웰빙이 뭐냐 하면 중산층 이상 시민들이 고도화된 첨단문명에 대항해 자연주의, 뉴에이지 문화 등을 받아들이면서 파생된 삶의 방식이라고 한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풍요를 조화롭게 이루어 가는 삶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아침에 신선한 채소와 곡식으로 생식을 하고 요가나 가벼운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며 점심은 좋은 친구와 기분 좋게 그리고 저녁은 되도록 가족과 함께 아로마향이 피어나는 곳에서 유기농 음식으로 차려 먹고 연극 음악 영화 관람을 즐기는 스타일을 말한단다. 말만으로도 담백하고 풍요한 일상이 느껴지지만 그것을 채워 넣기 위해서 또 얼마만큼의 수고와 가치가 희생되어야 할는지 한 세상 사는 일에 연민이 생긴다.
올드 타이머 남편에게 잘사는 것이 뭘까 물으니 ‘다른 사람에게 폐 안 끼치고 사는 것’이라는 간단 명료한 답을 준다. 잘사는 것에 대해 선문답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답을 구하기 어려울 때는 그냥 기도에 마음을 묻는다. 황금을 많이 가졌거나 적게 가졌거나 사람들의 어깨에 내려 앉은 외로움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사람을 사랑하면 할수록 외롭고 쓸쓸해지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안하고 살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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