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 100년 ‘최대수난’정체성 일깨운 계기
미주 한인 이민사의 최악의 시련으로 기록된 ‘4.29폭동’이 올해로 15주년이 된다. 1992년 그 해 4.29는 장기간 계속되던 심각한 경제 불황 속에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도시 흑인층의 잠재된 불만이라는 뇌관이 흑인 음주운전자 로드니 킹 구타 백인 경관들에 대한 무죄 평결에 자극을 받아 폭발한 ‘흑·백 갈등’의 발현이었다.
그러나 그 불똥이 ‘한·흑 갈등’으로 왜곡돼 튀면서 LA 한인사회가 최대의 피해자가 됐고 당시의 경험은 많은 한인들에게 화인과도 같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4.29는 한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줬지만 한인 커뮤니티에 이민사회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고 단합과 정치력 신장, 인종 화합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자각’과 ‘교훈’의 사건이기도 했다. 또 1.5세, 2세 젊은 세대들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부모세대를 이해하게 돼 이들이 커뮤니티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4.29의 진원지였던 사우스센트럴에서는 그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한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당시 화마와 폭도들의 발길에 무자비하게 짓밟혔던 ‘절망’의 땅, 바로 그 곳에서 찢겨진 관계의 그물을 화합의 끈으로 촘촘히 묶어 다시 ‘희망’을 재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아웃사이더’가 아닌 ‘커뮤니티와 함께 살아가는 일원’이 되어야 함을 잊어버리는 실수는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15년 전 그 외상의 흉터는 지금은 세월의 무게에 눌려 희미해졌고, 재앙과도 같았던 당시의 흔적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용서는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폭동 희생자 가족의 말은 4.29가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일깨운다. 그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운 교훈과 의미를 우리가 잊어간다면 4.29는 우리에게 다시 악몽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4.29를 후손들에게 우리가 겪은 뼈아픈 역사를 일깨워 줄 교육의 날로 상기시켜야 한다는 외침은 아직도 유효하다.
Then
<폭동 이틀째인 1992년 4월30일 LA 한인타운 버몬트와 3가 교차로의 샤핑몰이 폭도들의 방화로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있다.
>
Now
<당시 잿더미가 됐던 이곳은 말끔히 재건돼 더욱 활발한 분위기가 됐다. <신효섭 기자>>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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