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쟁 중 백마산을 올라가본 것은 부임 즉시 우리 방어선의 OP(전방 관측소)를 방문한 때와 UN군 사령관 테일러 대장을 안내하며 적의 포격을 우려해 노출이 불편할 때였다. 그러나 휴전 후 나는 방탄조끼는 입었으나 마음 놓고 정상에 서봤다. 대수롭지 아니한 땅덩어리를 지키기 위해 아까운 피를 많이 흘렸음을 통탄하면서 적측의 700 능선과 우리의 500 능선과의 중간 계곡을 바라보았다. 적도 우군의 시체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파괴된 철원 역 터에는 녹이 쓴 철도선과 파괴된 객차의 뼈만 남은 잔해가 한 키를 넘는 잡초에 묻혀 있었다. 그 보다 약 2Km쯤 남쪽에는 시가지의 터와 함께 2층 벽돌의 전쟁 전 북의 철원 지역 노동당 당사가 폭격으로 뼈대만 남아 우뚝 서 있었다. 휴전 당시의 피아 접촉선으로부터 남북 2km를 비무장지대로 설정하기로 돼있었다. 철원은 개활지라서 우리의 전방진지는 노동당사 자리 남쪽 야산지대가 선정되었다. 사단 방어 중심은 2중으로 되어 반영구적 진지가 구축되게 되어 목재 시멘트가 할당되기로 되었다. 진지 구축 경쟁이 전후의 사단 작전을 대신하게 되었다.
휴전 직후 나는 사단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부대 인원과 장비, 보급품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정비라 생각하였다. 전시 중에는 인원을 포함해 장비나 보급품의 분실도 전쟁 피해 소모 분실 등으로 처리되는 것을 묵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시라 그를 정확히 파악할 기회가 어려웠다. 그러나 휴전은 전시에 허용됐던 이유나 처리 방법이 허용되지 않는 정직한 부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전쟁은 국내 전쟁이기에 부대원 중에는 전사 혹은 실종 외에도 월북 가능성도 있었다. 군의 피복과 일상품은 물론 심지어는 총기까지 시장에 나돈다는 정보도 있었고 많은 민간차 중에는 군에서 유실 실종된 차량이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중대장 이상을 소집해 장차 요구되는 군의 평화시 운영을 위한 정직성을 강조했다. 전시 중 분실에 대한 회계 책임을 면하는 좋은 출발을 위한 인원 무기를 포함한 장비와 보급품에 대한 정밀 검사를 명하는 대신 인원을 포함한 여하한 결함에도 사단장이 책임을 지고 해결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짐했다. 후에 분실 보고서가 두꺼운 책자로 방대한 분량이 되었고 그 중에는 인원의 실종과 차량의 분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사전에 육군 군수국 차장이던 백선진 장군에게 중대장 이상에게 한 취지를 설명하였던바 군의 정직한 출발을 위한 좋은 생각이라고 오히려 격려를 받게 되어 필요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양해도 미리 구해 놓았다.
이 방대한 분실 보고서를 처리키 위해서는 미 군사 고문단의 협조와 육군 본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사단 수석 고문과 상의를 했다. 수석 고문이던 랜돌프 대령은 분실의 방대함을 보고 서명을 하지 못하겠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군의 한 고위 장교가 모처럼 정직해보겠다는 노력을 부대 군사 고문단이 방해한다는 보고서를 군사 고문단장에게 제출하겠다고 위협을 가했다. 랜돌프 대령은 2주간의 시간 여유를 요구했다. 수일 후 그는 분실 보고서에 서명하겠다고 나왔다. 아마 군사 고문단장과 상의해 본 모양이다. 나는 용기를 얻어 방대한 보고서를 육군 본부 국수국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당시 군수국장은 양국진 장군이었고 차장은 백선진 장군이었다. 나는 휘하 부대장들에게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를 하였고 이제부터는 정직한 군이 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고 기뻐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다. 중대장 중에는 사단장이 무슨 재간으로 분실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생각해 일부 분실 처리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한다. 한국의 군수 군기확립 문제는 내가 육군의 군수 참모무장으로 있던 전 기간에 걸쳐 내가 해결하지 못한 계속적인 두통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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