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작전교육국장 시절(1)
내가 미 참모 지휘대학에서 돌아와 받은 직책은 참모총장 정일권 대장이 약속한 것과는 달리 작전교육국장이 아니고 김일환 장군이 책임지고 있던 육군 관리 참모부의 차장이었다. 관리참모부는 비교적 새로운 참모부이며 육군의 예산과 육군 편제의 효율적 운영을 심사 분석함이 주 임무였으며 참모부장은 중장이며 차장은 소장으로 되어 있었다. 참모총장의 말에는 당시 김일환 장군은 많은 시간을 상공부의 고문격으로 나가 있으며 불원 상공부 장관으로 전출될 가능성이 많아 그의 후임으로 나를 생각하므로 장차 진급에 유리하게 된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미군에 보내지는 공문은 일단 나에게 보내 사전 점검을 받으라고 참모부에 지시하였다. 나는 그러한 영어의 능력도 없거니와 그러한 부담을 갖고 싶지 아니했으며 실질적으로 그는 실행되지 아니해 다행이었다. 나는 관리참모부에 재직하면서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는 거의 없다. 아마 내가 책임자가 아니었으며 재직기간이 불과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아니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의 기억에는 행정 참모부장에 장도영 장군이, 기획 참모부장에는 신응균 장군이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내가 관리 참모부 차장 6개월이 되지 아니해 김일환 장군은 총장의 말과 같이 상공부 장관으로 전출됐으며 그 후임에는 백인엽 장군이 오게 되고 나는 작전 교육국장이 되었다.
나는 군단 참모장, 사단장을 거쳐 제일 야전군을 창설한 경험으로 보아 육군의 작전 교육국장이 관리 참모부에 비하면 더 적절하고 흥미를 끄는 직책이었다. 나의 선임자에 대한 기억은 확실치 아니하나 장창국 장군으로 생각된다. 내가 부임하니 차장으로는 지금은 작고한 5기생 최택원 준장이었고 작전과장에 채명신 당시 대령이, 교육과장에는 장경순 대령이, 편재과장에 원충연 대령, 기획과장에 홍창표 포병 대령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중 채명신 대령은 바로 논산 훈련소로 전출되고 교육과장 장경순 대령은 김홍규 대령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후일 송찬호 대령이 차장 보좌관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육군의 작전 교육에 관한 대부분의 업무가 미 8군의 작전 참모부에서 행해져 한국 작전국은 8군 작전 참모부의 지시를 번역 하달하는데 불과한 실정이었다. 그럴 것이 한국군의 작전권이 8군에 이양돼 있었으며 한국군은 높아야 군단급으로 미8군, 혹은 미 집단 군단의 작전지휘를 받는 체제에 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작전에 관해 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없다. 휴전 중에 작전 참모부의 훈련을 위해 8군에서 담당하고 있던 교육 각서의 작성 하달에 대한 권한만이라도 한국군이 행사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기 위해 영어에 능통하고 육군 사관생도 교육에 관한 경험이 있던 김홍규 대령을 장경순 대령과 교체해 교육각서 작성 지시 하달의 권한을 8군으로부터 이양 받는 작업을 교섭시켰다. 교섭의 성과가 있어 처음으로 교육각서가 한국군에 의해 작성되고 예하 부대에 하달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나 당시에는 큰일이었으며 물론 8군과 사전 협조가 이루어졌다. 당시의 8군 장전 참모는 탱크 준장이며 내가 도미 후 그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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